年 1조 세탁기 수출길 ‘덜컹’… 최대 40% 관세 폭탄 우려

입력 2017-10-09 05:03

미국 정부가 자국으로 수입되는 가정용 대형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 발동을 검토하면서 1조원이 넘는 국내 세탁기 수출길이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트럼프 정부의 외국 기업 투자 유치에 호응해 미국에 가전 공장을 건립한다고 밝혔지만 미 정부가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면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가정용 대형 세탁기가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지난 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 수출한 세탁기 규모는 10억 달러(약 1조1400억원)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베트남과 태국에서, LG전자는 경남 창원과 베트남, 태국에서 미국 수출 물량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즉각 우려를 나타냈다. 삼성전자는 미국법인 뉴스룸을 통해 “ITC의 결정을 실망스럽게 생각한다”며 “삼성전자 세탁기에 대한 수입 금지는 선택권 제한, 가격 상승, 혁신 제품 공급 제한 등으로 이어질 것이며 결국 미국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LG전자 관계자는 8일 “세이프가드가 실제로 발효된다면 피해는 미국의 유통과 소비자가 입게 될 것”이라며 “오는 19일 열리는 공청회에서 월풀이 피해를 보지 않았음을 적극 소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월 미국 가전업체 월풀은 ITC에 가정용 대형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발동해줄 것을 청원했다. 월풀은 현재 1%대인 해외 업체의 세탁기 관세를 40%대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풀이 청구한 대상은 세탁기 완제품뿐 아니라 주요 부품까지 해당된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부품을 미국에 들여와 조립하는 것도 관세를 매긴다고 하면 미국에 세우고 있는 현지 공장도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미국 시장에서 월풀과 다른 가전업체는 출발선부터 달라진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지배력이 약화되고 있는 월풀이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에 편승해 위기를 타개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월풀의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계속 줄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트랙라인에 따르면 월풀은 2014년 세탁기 점유율 41%에서 올해 상반기 38%로 감소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3%에서 상승세를 이어가 31%로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테네시주에 추진 중인 가전 공장 투자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초부터, LG전자는 2019년 1분기부터 미국 공장에서 세탁기 생산라인을 가동한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3억8000만 달러(약 4400억원), LG전자는 2억5000만 달러(약 2900억원)를 투자키로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무역 제재가 발생하면 미국 소비자는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하고 미국과 외국 기업의 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ITC는 오는 19일 공청회를 열고 다음달 21일 구제조치 방법과 수준을 결정한다. 이후 12월 4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60일 이내에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글=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