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멍청이라 했나” 틸러슨 “…” 꺼지긴커녕 번지는 불화설

입력 2017-10-08 17:3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불화설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틸러슨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설을 부인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연일 틸러슨 장관의 신임을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워싱턴 정가는 두 사람의 결별을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마이크 폼페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틸러슨 장관 후임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불화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틸러슨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수면 위로 불거졌다. “북한과 2∼3개 대화 채널이 있다”고 말한 틸러슨 장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하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일갈한 것이다.

나흘 후인 지난 5일 NBC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을 분노하게 만드는 보도를 내보냈다. 틸러슨 장관이 지난 7월 국방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moron)’라고 불렀으며, 이후 사임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보도를 접한 백악관은 발칵 뒤집혔다. 존 켈리 비서실장은 라스베이거스 총기사건 피해자들을 위로하러 떠나는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하는 대신 워싱턴DC에 남아 사태 수습책을 논의했다. 켈리 실장은 틸러슨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동시에 백악관으로 불러 경위를 물었다.

직후 틸러슨 장관은 국무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나의 헌신은 한결같이 강하다”며 “대통령이 원하는 한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7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틸러슨 장관과 사이가 매우 좋다”며 “그와 몇 가지 이견이 있긴 하다. 가끔은 그가 좀 더 완강하기를 바란다”고 불화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틸러슨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것이 계속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런 틸러슨 장관에게 실망했었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장관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 문제뿐 아니라 이란 핵 합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아프가니스탄 문제 등 주요 외교 현안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의견이 달랐다.

틸러슨 장관은 파리협정 파기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대한다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이란 핵 합의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중동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도 틸러슨 장관과 백악관의 알력을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틸러슨 장관이 대통령의 체면보다 미국의 국제적 위신을 중시한다며 측근 인사들에게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 석유기업 엑슨모빌의 회장 출신으로 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틸러슨 장관이 워싱턴 정계에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 의회 관계자들은 틸러슨 장관이 미 상원 군사위원장이자 공화당의 거물인 존 매케인 의원조차 취임 이후 단 한 차례 만날 만큼 소통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이 폼페오 국장을 틸러슨 장관의 교체 카드로 제안했다고 6일 보도했다. 하원의원 출신의 대북 강경파인 폼페오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신임하는 최측근 인사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축출과 한반도 재래식 전쟁 발발 가능성 등을 공개 거론한 적이 있다. 지난 4월 말 한국을 방문해 오산 미 공군기지와 연평도를 둘러보기도 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