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도까지 계산한 총격범… 1주일 지나도 동기 오리무중

입력 2017-10-08 17:39 수정 2017-10-08 20:43
미국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 시내에 설치된 십자가에 6일(현지시간)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십자가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 꽃과 하트 표시가 달려 있다. AP뉴시스

총기난사 사건은 보통 하루나 이틀이면 전모가 드러나지만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발생한 미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은 1주일이 지났음에도 범행 동기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도박을 즐기던 부유한 60대 백인 총기수집광이 치밀하게 준비하고 시행한 대학살이었다는 사실 정도만 드러난 가운데 정신질환에 따른 범행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총격범 스티븐 패덕(64)이 묵던 만달레이 베이 호텔 32층 스위트룸에서 호텔 옆 콘서트장에 모인 관객 수와 거리, 탄도를 계산한 자필 노트가 발견됐다고 8일 CNN방송이 보도했다. 수일에 걸쳐 호텔방으로 23정의 총기를 가져온 패덕은 1일 밤 컨트리가수 콘서트에 모인 2만2000여명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58명이 숨졌고 500명가량이 다쳤다. 패덕은 경찰특공대가 호텔방에 들이닥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이 패덕의 단독범행이며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단체와의 연관성도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1000개가 넘는 단서를 확인했지만 아직 뚜렷한 범행 동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용의자가 남긴 유서나 SNS 메시지, 지인과의 통화내용 등을 보면 범행 동기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다 뒤져봐도 이거다 싶은 게 나오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은퇴한 회계사인 패덕은 부동산 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고 밤새도록 도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인관계는 원만하지 않아 술을 혼자 마셨다. 그는 두 번 이혼했고 필리핀계 여성 마리루 댄리(62)와 동거 중이었다. 패덕의 동생 에릭은 “형이 백인우월주의자 단체를 비롯한 정치적 조직이나 종교단체에 가입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패덕이 7세 때 그의 아버지 벤저민이 기관총을 들고 은행을 털다 경찰에 붙잡혀 수감됐다. 벤저민은 사법 당국으로부터 ‘위험한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았고 두 차례 탈옥하기도 했다.

패덕은 전과는 없으나 총기를 사들이는 데 몰두했다. 그가 갖고 있던 총기는 호텔방의 23정과 자택의 24정을 합해 47정이나 된다. 이 중 33정은 최근 1년간 여러 주(州)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총기 규제가 워낙 느슨한 탓에 이처럼 짧은 기간에 다량의 총기 구매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텔에 주차된 패덕의 자동차에선 23㎏ 정도의 폭탄 재료와 실탄 1600발이 발견됐다. 붙잡힐 때까지 차에서 공격을 계속할 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패덕의 동거녀 댄리는 최근 몇 달 동안 패덕의 정신건강을 우려해 왔다고 수사 당국에 진술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ABC뉴스는 패덕이 확진받은 적은 없지만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수사 당국은 보고 있다고 전했다. 패덕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총기난사범에 전형적으로 나타난 반사회적 성향을 패덕도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