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에 사는 김모(45·여)씨 부부는 6년 전 요크셔테리어 ‘미달이’를 18년간 키운 끝에 하늘로 떠나보냈다. 정든 식구였던 미달이는 나이가 든 후 관절이 나빠져 치료비로만 200만원 이상을 썼다. 지금 키우고 있는 건 일곱 살 말티즈 ‘재림’이다. 유기견으로 안락사시키려던 걸 데려와 ‘다시 살았다’는 뜻에서 이름을 ‘재림(再臨)’으로 지었다.
재림이와 행복한 나날을 지내면서도 김씨는 맘 한편이 불안하다. 예전에 미달이를 치료하면서 겪은 금전적 부담 때문이다. 김씨는 “요즘엔 개들도 사람처럼 장수하는 경우가 많지만 질병 치료비를 감당 못해 버리는 경우가 주변에 많다”면서 “보험이 싼값에 보급만 된다면 수요가 많겠지만 절차나 상품이 홍보가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관련 의료시장도 함께 커지는 추세다. 하지만 반려동물 보험 시장은 그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반려동물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마이크로칩이 이식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 보험료 산출이 어려운 게 근본적 원인으로 꼽힌다. 동물병원마다 들쑥날쑥한 진료비, 보험사들이 이전에 시장 개척에 실패했던 경험 때문에 사업 확장에 소극적인 것도 이유다.
8일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전체 가구의 30.9%에 달한다. 이에 따라 추산하면 국내 반려동물 수는 개와 고양이를 합해 약 860만 마리다. 성장세에 더해 다른 반려동물까지 합하면 1000만 시대가 코앞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 자체가 많아졌지만 반려동물의 수명도 늘어나는 추세다. 글로벌 의료업체 네오젠에 따르면 미국에서 반려견의 평균 수명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약 6개월 늘어났다.
수요가 늘고 있음에도 국내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은 저조하다. 지난달 보험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은 0.1% 수준이다. 영국 독일 미국 등 선진국은 10∼20%로 우리나라의 100배 이상이다. 국내 보험사들은 2007년부터 반려동물 보험 상품을 내놨지만 손해율이 100%를 상회하자 줄줄이 시장에서 철수했다.
현재 반려동물 보험을 따로 판매하는 건 삼성화재 롯데손해보험 현대해상 3곳에 불과하다. 이마저 가입 가능한 반려동물의 연령을 개의 경우 만 6∼7세 수준으로 제한하는 등 요건이 까다롭다. 보험료는 종과 보장 범위 등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지만 적게는 연간 10만∼60만원선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반려동물 보험 시장이 규모가 커지긴 하겠지만 아직 체계적인 애견관리 시스템이 없는 게 문제”라면서 “보험사 입장에서는 선뜻 나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근엔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서 반려동물 관련 정책을 내세우는 등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는 중이다. KB금융그룹은 계열사의 카드, 보험 서비스를 결합시켜 ‘KB펫코노미 패키지’를 지난 7월 출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보험 시장이 커지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정부 등록이 보다 활성화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2014년부터 반려동물 등록이 의무로 전환됐지만 실제 지난해 말 기준 등록된 반려동물 수는 총 107만 마리에 그쳤다. 마이크로칩 이식으로 반려동물 관련 데이터가 축적돼야 적절한 상품 설계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등록이 되지 않은 경우 다른 반려동물을 데려가 진료를 받는 등 보험사기 가능성도 높다.
동물병원 진료비가 병원마다 워낙 들쑥날쑥인 점도 문제다. 표준 의료수가가 정해지지 않아 적정 보험료 산출이 어려워서다. 또한 반려동물을 번식시키는 시스템 자체가 열악해 선천적 질병 관리가 안 되는 점도 보험사들이 반려동물 보험 시장의 리스크가 높다고 여기는 이유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전반적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한국애견협회와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광회 농림축산식품부 사무관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동물개체 인식 강화를 위해 개체인식 신기술 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내년 6월을 목표로 자율적 표준진료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반려동물 1000만… 보험시장은 걸음마
입력 2017-10-09 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