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마땅한 정책이 없는 나라다(North Korea is the land of lousy options).”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된 빅터 차 교수의 2011년 하원 청문회 발언이다. 북핵 해결에 묘수가 없음을 강조한 얘기다. 한 전문가는 현 상황에서 ‘최악(worst)의 정책’은 예방적 군사공격이고, ‘더 나쁜(worse) 정책’은 핵 보유를 용인하고 북과 협상하는 것이며, 그나마 ‘나쁜(bad) 정책’은 현재의 대북정책을 보다 강력하게 밀어붙여 북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이 ‘나쁜 정책’으로 북의 셈법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거의 완벽에 가까운 억지력을 구비해 북이 핵과 미사일로 쟁취하려는 전략적 이익을 철저히 부인해야 한다. 둘째, 경제제재뿐 아니라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대북 압박을 지속·강화해 정권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강력한 억지력을 위해 우선 한·미동맹 차원에서는 2009년 명문화한 ‘확장억지 수단’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 미국은 핵 전력, 재래식 전력, 미사일방어체제(MD) 세 수단으로 대북 확장억지를 한국에 제공한다. 거듭된 확장억지 제공 확약에도 불구하고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하던 오바마 행정부의 안보 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이 줄면서 ‘핵우산’이라는 말은 슬그머니 사라졌고, 재래식 전력과 MD만으로도 북핵을 억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곤 했다. 하지만 확장억지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핵억지’다. 한국도 나토처럼 미국과 핵무기 공유 프로그램을 가동해 미국의 핵 전력 운용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확장억지 수단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미국의 전략핵은 기본적으로 본토방어용이다. 전술핵 재반입이 어려우면 핵 공유 프로그램으로 미 핵 전력의 확장억지력을 제고해야 한다. 핵미사일 탑재 핵잠수함(SSBN)과 이지스함으로 구성된 핵항모강습단 배치도 확장억지력을 제고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여의치 않으면 자체 핵 개발을 준비해야 한다.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니라 여차하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준비태세를 확보하자는 얘기다.
한·미동맹에만 의존할 수 없다. 정부는 킬체인(Kill Chain),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체계(KMPR) 3축 체계를 조기 구축해 자체적인 대북 억지력을 제고할 계획이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정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임박한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을 탐지해 선제타격하는 킬체인과 북한 지휘부를 대량응징보복하는 KMPR 2022년 조기 구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킬체인과 KMPR의 ‘눈과 귀’가 될 정찰위성 개발 계획은 여태 표류하다 연내 착수하기로 결정됐다. 자체 개발 전까지 외국에서 임차해 사용하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인데, 정찰위성은 전략무기라 빌려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제한된 예산을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에 우선 투여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 눈치 보고 중국 배려하느라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에 소홀했다. 패트리엇 미사일도 요격 기능이 거의 없는 PAC-2를 중고로 들여왔고, 한국 최초 이지스함 세종대왕함에도 미사일 요격 기능이 없다. 겨우 들여온 사드 한 포대도 레이더 탐지거리에 민감한 중국을 배려하느라 성주에 배치했다. PAC-2를 요격 기능이 뛰어난 PAC-3로 조기 업그레이드하고, 이지스함에도 요격미사일 SM-3을 조속히 배치해야 한다.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수도권 방어체계 구축도 시급하다.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가 잘 작동하려면 미국 MD와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정책이 ‘나쁜 정책’인 이유는 중국을 자극해 동북아 신냉전 구도를 고착시키고, 남북 군사 경쟁을 가속화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북아 신냉전에서 생존하고, 남북 군사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북핵 대응은 ‘좋은 정책’과 ‘나쁜 정책’ 중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나쁜 정책’과 ‘더 나쁜 정책’ 중 선택의 문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한반도포커스-김재천] 북핵, 나쁜 정책과 더 나쁜 정책
입력 2017-10-08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