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낮 12시30쯤 경력 6년의 택배기사 김성식(가명·41)씨는 수염이 거뭇거뭇한 얼굴로 서울 광진구 주택가 입구에 나타났다. “까대기 작업이 지연돼 30분가량 늦었다”면서 기자를 재촉했다. 추석을 앞두고 택배기사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기자가 체험하기 위해 그의 트럭에 올라탔다.
까대기는 택배 물품을 배송지별로 분류하는 작업이다. 김씨는 “택배기사가 배송만 하는 줄 알지만 매일 아침 7시까지 출근해 까대기를 해야 배송이 가능하다”며 “평소에는 4시간쯤 걸리는데 추석이라 물량이 30% 정도 늘어 더 지체됐다”고 말했다. 수염을 기르는 중이냐고 물으니 그는 “피곤해서 면도를 못했다”며 “어제도 밤 10시쯤 퇴근했다”고 했다.
트럭은 50m를 채 안 가 멈췄다. 첫 번째 배송지다. 트럭 뒷문을 열자 상자가 가득했다. “어휴, 이 많은 물량을 언제 다 배달하죠.” 놀라서 묻는 기자에게 김씨는 “이 정도는 많은 것도 아니다”며 “딸, 아들이 있는 기사들은 하루에 300∼400건도 배달한다”고 했다.
김씨가 이날 배달해야 할 물건은 모두 230건. 그는 트럭에서 물건을 꺼내 바코드를 찍고는 거뜬히 들어올렸다.
김씨는 “하루에 배달하는 물건이 평균 250개 안팎인데 물건 1개에 1분에서 1분30초를 써야 한다”면서 “만약 2분을 넘기면 그날은 자정까지 집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했다. 1시간 동안 그가 배송한 물량은 47개였다. 개당 1분17초를 쓴 셈이었다.
“아, 3층이네요.”
20㎏짜리 쌀을 주문한 집이었다. 그는 쌀을 어깨에 짊어지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특별한 장면이 아니었다. 김씨는 7시간 내내 뛰어다녔다. 쌀이든 생수든 짊어지고도 걷는 법이 없었다. 밥도 먹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지만 일할 때는 피울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살도 안 찌는 거냐고 물었더니 “함께 일하는 택배기사 70명 중에서 세 번째로 뚱뚱하다”며 웃었다. 키가 170㎝인 그의 몸무게는 63㎏.
김씨는 “하루에 이렇게 뛰는 거리가 약 20㎞, 평균 3만보쯤 된다”고 했다. 택배기사는 배송 1건당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810원을 받는다. 이 돈으로 휴대전화비, 유류비, 식사비, 건강보험료까지 모두 내야 한다. 아파서 쉬면 일당도 받을 수 없다.
명절에는 배달해야 할 물건이 증가해 벌이도 늘지만 고충도 크다. 직접 주문한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 보내는 선물인 경우 주소가 잘못 적힌 경우가 많다.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리고 전화를 주고받고 길을 헤매느라 경비도 더 든다.
명절 뒷감당도 걱정이다. 김씨는 “택배기사들은 추석 전보다 연휴가 끝난 뒤가 더 바쁘다”고 했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올 추석 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24% 늘어나 연휴 후 첫날인 오는 11일 하루 물량만 1700만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오후 8시쯤 배송이 끝났다. 짐칸에는 반송품 10여개만 남았다. 김씨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송품이나 내일 보낼 택배를 회사에 반납해야 한다. 그는 “얼른 회사로 돌아가 물건을 처리하고, 고양이 밥도 챙겨줘야 한다”며 차에 올랐다. 트럭 위로 반쪽달이 떠 있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택배 1개당 1분 사수”… 끼니도 거른 채 하루 20㎞ 뛰어
입력 2017-10-0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