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도쿄 영빈관에서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협정서에 서명했다.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다. 이 선언은 다음 주 일요일로 19주년을 맞는다.
당시 기자였던 이낙연 현 총리는 국내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공개했다. 선언 이듬해인 1999년 3월 오부치 총리가 방한했을 때 류관순 열사 동상에 헌화할 계획이었다는 것. 이 계획은 일본 내의 반대로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만약 이가 실제로 이뤄졌다면 1970년 독일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위치한 유대인 위령탑에 무릎을 꿇으면서 헌화한 일에 버금가는 역사적 사건, 일대 전환점이 되었을 터이다.
내년의 20주년을 계기로 선언의 정신을 재조명하자 등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각에선 한·일 위안부 합의를 넘어서는 제3의 공동선언을 마련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대일 특사로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꺼낸 말이다.
그렇다면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어떠한 정신을 담고 있는가. 이 선언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일 정책에 관한 철학과 신념을 오롯이 반영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 전 대통령의 대일 정책은 크게 세 가지 기본 원칙을 갖는다.
우선 김 전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 진정한 한·일 관계 개선은 불가능한 점을 숙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다른 나라의 압력으로 풀 수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즉 일본이 자발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로 보았다. 앞서 언급한 오부치 총리의 류관순 열사 동상 헌화 계획은 그러한 자발성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의 자발성에 대한 기대는 오부치 총리 사망 후 역사교과서 문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라는 역풍으로 산산이 깨졌다.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의 자발성에 대한 믿음은 끝까지 견지돼야 한다. 여전히 양 국민 간 과거사에 대한 인식의 갭은 크며 이러한 갭을 줄이려는 자세도 돼 있지 않다. 거듭 강조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민족주의 프레임이 아닌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 인권 규범의 신장·확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것이 인식의 갭을 메울 기준이 되며 과거의 희생을 보다 값지게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김 전 대통령은 양국이 민주주의, 시장경제, 미국과의 동맹을 공유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을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담보할 수 있는 핵심적 기반으로 설정했다. 이러한 가치 공유론은 일본에도 폭넓게 전파되어 오늘날 양측 모두 한·일 관계를 규정하는 기본 틀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가치 공유론이 양국 내에서 곡해·와전되고 있는 점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일 안보 협력의 근거로 이러한 가치 공유를 제시하는 경향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한·일 안보 협력을 기존 냉전질서를 극복하기 위한 탈전장화 전략 차원에서 추진했다. 대북, 대중 안보동맹화가 아니라 유럽연합(EU)의 산파 역할을 한 독일-프랑스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다. 민주주의 확산 문제도 그렇다. 그는 민주주의는 타국에 강요하는 것이 아니며 당사국들이 스스로 성취해야 하는 문제로 보았다. 위에서 언급한 한·일 안보 협력론은 민주주의 국가 대 권위주의 국가의 대결이란 이분법적 자타 구분에 의거한다. 북한의 민주화, 중국의 민주화는 필요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마지막은 실질적인 국익에 대한 다차원적 고려다. 대일 유화적 자세는 한일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IMF 위기 속에서의 일본의 금융 지원,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일본의 지지 확보, 북한 경수로 지원 사업에 대한 일본의 지지, 그리고 북·일 수교 촉진 등을 염두에 둔 포석이기도 했다. 문재인정부의 대일 투 트랙 외교도 향후의 북·일 수교까지 상정한 전향적인 외교가 되었으면 한다.
서승원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장 교수
[한반도포커스-서승원] 다시 주목되는 DJ의 대일정책
입력 2017-10-01 1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