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받고 보름달처럼 환한 웃음에 뭉클”

입력 2017-10-01 18:44
대한성공회 푸드뱅크 자원봉사자들이 지난달 15일 서울 중구 정동국밥에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할 도시락에 반찬을 담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서울 종로구 이화동의 한 독거노인(가운데)이 푸드뱅크 봉사자들로부터 도시락을 건네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 첫번째는 푸드뱅크에서 10년째 배달 봉사를 하고 있는 차기성씨. 김동우 기자
지난달 15일 오전 8시. 대한성공회 푸드뱅크(대표 김한승 신부) 중앙사무국이 위치한 서울 중구 정동국밥에 들어서자 밥 짓는 냄새가 모락모락 났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설립된 푸드뱅크는 전국에 30개 지부가 있다. 19년째 매일 1만1700여명 독거노인과 불우이웃 등 배고픈 이에게 사랑이 담긴 음식을 전하고 있다.

국밥집 테이블에는 흰 쌀밥과 김치, 닭볶음과 양배추 절임이 놓여 있었다. 앞치마를 둘러멨다. 행여 반찬을 흘리지 않을까, 밥과 반찬을 구별해서 잘 담았는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12년째 금요일 새벽마다 반나절을 봉사해 온 안수경(47·여)씨의 손은 일일 봉사자들보다 갑절은 빨랐다. 안씨는 “서울 광화문에서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열린 주먹밥 콘서트를 보고 이곳을 처음 찾았다”며 “밥을 받아들고 고마워하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오전 10시30분 300여개 도시락이 뚝딱 완성됐다. 도시락 100개와 봉사자 5명을 실은 승합차가 시동을 걸었다. 승합차는 서울 종로구 이화동 좁은 언덕길을 올라 독거노인이 사는 집 문 앞까지 반찬과 도시락을 배달한다.

“여든 가까운 할머니도 폐휴지를 주워 불우이웃을 돕습니다. 그런 분에 비하면 제 봉사는 별거 아니에요.”

10년째 배달을 맡아 온 차기성(65)씨가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손사래 치며 답했다.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한화그룹에서 온 자원봉사자 5명도 열심히 골목길을 누볐다. 햇볕을 쬐며 열 집 가까이 언덕길을 오르내리자 숨이 차기 시작했다. 마로니에공원에서도 도시락 70여개가 노숙인들에게 전달됐다. 음식을 받아들며 고마워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피로는 순식간에 잊혀졌다.

낮 12시. 도시락이 모두 소진되자 국밥집으로 돌아와 얼큰한 국밥 한 그릇을 얻어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다시 도시락 200여개를 냉장 탑차에 싣고 시동을 걸었다. 영등포구 곳곳 독거노인과 쪽방촌 주민들에게 도시락을 전하기 위해서다.

영등포구 쪽방촌에 도착하자 50명 넘는 주민들이 줄을 섰다. 빵과 음료, 도시락을 받으며 어린이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빵을 조금만 더 달라”는 주민에게 차씨는 “정해진 양이 있다”면서도 빵을 하나 더 건넸다. 차씨는 “도시락이 부족하거나 많으면 사람들끼리 싸움이 일어날 수 있어 정량에 맞춰야 한다”고 귀띔했다.

봉사자의 안부를 묻는 어르신, 이웃에게 전달할 도시락을 지키는 쪽방촌 주민, 다문화가정을 섬기는 요양사 어머님…. 다양한 이웃에게 도시락 300개가 모두 전달될 때쯤, 300여 이웃들의 눈빛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한 그들과의 관계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도시락을 전달하며 헤어질 땐 정든 친구마냥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푸드뱅크가 음식과 함께 건넨 건 서로 간의 ‘온기 어린 관계’였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강민석, 김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