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28)씨는 증권사들이 잇따라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낮춘다는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한 증권사의 이자율 인하 이벤트 때 200만원을 대출받아 주식투자를 했다가 폭삭 망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이씨는 “그때 샀던 주식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고 말했다.
‘쉬운 대출’ 논란이 은행권을 넘어 금융투자업계로 번지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증권사들의 이자율 인하 경쟁을 ‘정상화’라는 긍정적 시각으로 본다. 하지만 ‘빚 투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불거지고 있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식 위탁매매시장 1위인 키움증권은 오는 11월부터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최대 4.3% 포인트 내린다. NH투자증권은 지난달에 ‘7일 이내 신용거래융자’의 이자율을 연 5.9%에서 연 4.5%로 낮췄다.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KTB투자증권 등 증권사 대다수가 이자율을 내렸다. 신용거래융자는 증권사가 고객에게 주식매수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증권사들이 앞다퉈 이자율을 내리는 배경에는 금융감독원의 압박이 있다. 금감원은 최근 신용거래융자 이자율 합리화를 금융소비자를 위한 우선 추진과제로 선정했다. 당국은 기준금리가 1%대인 데도 증권사들이 고금리를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의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은 대출 기간에 따라 평균 5.9∼11.75%에 이른다.
이미 빚을 내 주식을 사는 투자자는 늘고 있는 추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으로 코스피·코스닥시장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8조5244억원에 달한다. 지난 22일 8조7028억원을 찍으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자율이 낮아지면 ‘빚내서 투자’가 한층 늘어날 것으로 본다. 이인호 서울대 교수는 “이자율 인하로 대출이 쉬워져 신용거래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라며 “증권사들도 이자율을 낮추면 장기적으로 신용거래 확대에 따라 이자 수익이 더 증가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키움증권이 신용융자 이자율을 0.25% 포인트 내리자 3분기 신용융자금은 전 분기보다 25.2%나 증가했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처분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금융투자업 규정에 따라 증권사는 일정 기간 내에 대출금을 갚지 못한 투자자의 주식을 당일 종가기준의 가격으로 반대 매매할 수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전문지식이 부족한 개인 투자자의 경우 신용거래융자 이자율 인하에 편승해 섣부르게 대출을 받았다가 크게 손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안규영 기자 kyu@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빚내서 주식투자’ 권하나… 증권사도 ‘쉬운 대출’ 합류
입력 2017-09-2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