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땜질 처방만 하는 사이 20년前으로 ‘뚝’

입력 2017-09-29 05:01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故) 백남기 농민 1주기 추모대회에선 정부를 향한 성토가 이어졌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김영호 의장은 “백 농민 1주기가 됐으나 쌀값은 20여년 전 수준”이라면서 “농민은 가마(80㎏) 당 최소 24만원을 요구한다”고 외쳤다. 이번 주 중에도 서울 도심에서 연일 쌀값 보장을 요구하는 농민 단체의 집회가 이어졌다.

농민들이 바쁜 추수철에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이어가는 건 쌀값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5일 쌀 한 가마(80㎏)의 산지 평균 가격은 13만3348원이다. 4년 전인 2013년의 17만5552원보다 24.0% 하락했다. 20년 전인 1997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20년 동안 소비자물가가 71.5% 오른 것과 비교하면 폭락한 것과 마찬가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8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수확기 쌀 수급안정 대책’을 확정했다. 정부가 공공비축미 35만t과 추가 시장격리물량 37만t 등 모두 72만t의 쌀을 매입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쌀 격리제도는 수확기에 앞서 적정 생산량과 소비량을 산정한 뒤 그 이상의 쌀이 생산되면 초과 물량을 시장에서 격리해 가격을 안정시키는 제도다. 올해 시장격리 물량 37만t은 역대 최대 규모다.

농민들은 정부의 이번 대책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성명서를 내고 “이번 대책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미흡하다”면서 “1㎏당 쌀값 3000원을 보장하고 총 100만t 매입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가 발표한 쌀 매입량으로는 쌀값이 충분히 오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매년 이런 식으로 ‘정부가 몇 t의 쌀을 매입할 것인가’를 두고 농민과 정부가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근시안적 논의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민간 농업 연구기관인 GS&J인스티튜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시장격리분 쌀 매입에 대해 “정부가 풍작 시마다 시장격리를 계속하면 정부재고가 늘어나 수확기 쌀 가격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결국 가공용과 사료용으로 처분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부작용이 초래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쌀 소비량을 크게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쌀 생산 여력을 다른 작물 생산으로 돌려 생산량을 줄이는 식의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최근 쌀값이 하락하는 배경엔 쌀 소비량은 줄고 있는데 쌀 생산량은 오히려 증가한 데서 발생한 수급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쌀 생산량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 대책 중 하나로 쌀 생산조정제를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벼농사를 짓던 농민이 3년간 다른 작물을 재배할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직불금 제도도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쌀 직불금이 다른 작물의 직불금보다 유리하게 돼 있어 농민들을 벼 농사로 유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명환 GS&J인스티튜트 농정전략연구원장은 “현재는 쌀 직불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쌀 목표가격이 높아 쌀 재배 농민이 더 많은 직불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쌀 농사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쌀 목표 가격을 낮추고 그 과정에서 절약되는 예산을 수입 의존도가 높은 콩 등의 작물 직불금을 높이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윤성민 이성규 허경구 기자 woody@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