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안가는 청춘 ‘한가위 한숨’… 청년고통지수 갈수록 악화

입력 2017-09-29 05:00
서울 송파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오모(24·여)씨는 이번 추석 연휴 때 친구들만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친척집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 얼마 전 친척 장례식장에서 겪은 일 때문이다. 장례식장에 모인 친척들에게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하자마자 잔소리가 쏟아졌다. “회사는 다 똑같다” “주말근무 안 하는 회사 찾기 힘들다”고 하더니 급기야 “요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안 하려 해서 문제”라는 말까지 들었다.

9급 공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한 이모(31)씨는 고향인 부산에 가지 못한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추석을 보낼 계획이다. 필기시험 합격자 수가 채용 인원의 2배수나 돼 최종 합격을 장담할 수 없다. 연휴에도 면접 준비에 집중해야 한다. 이씨는 “제가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게 집에서도 오히려 신경이 덜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길게는 열흘에 이르는 황금연휴가 주말부터 시작되지만 청년들은 긴 연휴가 반갑지만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8일 발표한 ‘추석 서민 및 청년 경제고통지수의 변화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추석 직전 청년의 경제고통지수는 2015년 22.5%에서 올해 24.9%로 악화됐다.

경제고통지수는 경제적 삶의 질을 측정하기 위해 고안됐다. 연구원은 청년 체감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청년 경제고통지수를 새로 계산했다. 청년이 실감하는 물가상승률은 전체 물가상승률과 비슷했지만 청년의 체감실업률이 높아져 경제고통지수도 올랐다. 전체 실업률이 4%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청년 체감실업률은 20%를 웃돈다. 지난달에는 둘의 격차가 18.9% 포인트까지 확대됐다.

올 상반기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모(30)씨는 집안사정 때문에 박사과정을 포기했다. 뒤늦게 취업시장에 뛰어든 김씨는 추석이지만 고향에 갈 여유가 없다. 나이가 서른인데 취업도 못했다는 소리를 들을까봐서다. 김씨는 “친척들에게 ‘석사까지 했는데 취업은 잘 되겠지’ ‘좋은 대학 나와도 별수 없네’라는 소리를 듣는 게 두렵다”고 밝혔다. 추석 이후에 있는 공채 일정도 김씨에겐 부담이다. 김씨는 “자기소개서 문항도 아직 몰라 추석에 뭘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막연하지만 일단 준비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청년들을 위한 대안과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벤처와 청년창업 활성화 등을 바탕으로 청년 신규 일자리 창출력을 강화하고 기업의 청년고용 인센티브를 확대함으로써 청년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입시 취업 결혼 등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지금의 청년세대에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며 “명절에 만나는 청년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 말고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말과 행동을 보여주라”고 조언했다.

글=손재호 김현길 허경구 기자 sayho@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