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없었지만… 목포시청, 한 편의 ‘축구동화’ 썼다

입력 2017-09-29 05:00
김정혁 목포시청 감독(오른쪽)이 27일 울산 현대와의 FA컵 준결승전을 치른 뒤 선방쇼를 펼친 골키퍼 박완선을 격려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울산은 3명이나 교체했는데, 우리는 선수층이 얇아 교체를 못하니 속이 터질 노릇이었죠.”

내셔널리그(3부 리그) 목포시청의 김정혁(49) 감독은 2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울산 현대와의 2017 KEB하나은행 FA컵 준결승전을 떠올리며 답답했던 마음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목포시청은 전날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후반 초반 맹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울산은 3명의 선수를 교체해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결국 울산의 교체카드 김인성은 후반 32분 결승골을 터뜨렸다. 교체카드가 없었던 목포시청은 결국 뒷심이 달려 0대 1로 석패했다. 김 감독은 “결승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번에 팬들에게 내셔널리그를 알리게 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해 예산이 20여억원 밖에 되지 않는 실업팀 목포시청은 이번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창원시청(3라운드·2대 0 승), 양평 FC(32강전·1대 0 승), 포천시민구단(16강전·1대 0 승), 성남 FC(8강전·3대 0 승)를 잇따라 제압한 것이다. 목포시청은 8강전까지 4경기에서 7득점 무실점을 기록했다. 철저한 상대 분석과 맞춤형 전술 덕분이었다. 김 감독이 울산전을 대비해 준비한 선수비-후역습 전술과 다양한 세트피스 패턴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나는 선수들을 도와 준 것밖에 한 일이 없다”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김 감독은 2009년 12월 목포시청 창단 지휘봉을 잡은 이후 8년째 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현역시절 1994 미국월드컵과 1998 프랑스월드컵 대표로 활약하며 명성을 날렸다.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은퇴한 후 전남 코치(2007∼2008년)를 역임하며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김 감독은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덕장이다. ‘형님 리더십’으로 호통을 치는 대신 칭찬을 하며 선수들의 잠재능력을 이끌어 낸다. 경기에서 져도 내용이 좋으면 선수들을 칭찬한다. 한 편의 축구동화를 쓴 김 감독은 “FA컵 우승의 꿈은 사라졌지만 다음 달 20일 개막하는 전국체전에선 우승의 꿈을 이뤄 보고 싶다”고 각오를 전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