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케미포비아 극복할 유해물질 대책 제시하라

입력 2017-09-28 17:29 수정 2017-09-28 21:25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8일 생리대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1차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판매 중인 생리대와 기저귀에서 유해 화학물질인 VOCs가 검출됐으나 매우 적은 양이어서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인체 위해성’은 없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는 한참 늦은 데다 클로로포름, 벤젠 등 10종만 대상으로 한 1차 조사 결과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식약처가 모든 VOCs 검출 여부를 확인해 2차 조사결과를 내년 5월까지 내놓고, 이후에는 부작용 사례 및 역학조사에도 나서겠다고 약속해 우리사회를 강타한 생리대 파동은 어느 정도 진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차분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없이 과장된 말로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다. 생리대에서 VOCs가 나왔는지, 그것이 인체에 얼마나 위해한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를 해결할 수 없다. 많은 국민이 정부의 유해 화학물질 관리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불신이 계속된다면 다음에는 어떤 생활용품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른다.

우리 머릿속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험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막연한 공포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정부는 이런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할 방안을 반드시 찾아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식약처의 안일한 자세부터 바꿔야 한다. 여성환경연대가 미국에서 판매되는 생리대에서 VOCs가 검출됐다는 미국 시민단체의 보고서를 접한 것이 지난해 10월이다. 시민단체도 볼 수 있는 보고서를 식약처가 무시한 이유는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품질관리 검사기준에 VOCs를 생략한 식약처가 우리나라 생리대에서도 VOCs가 검출됐다는 강원대 김만구 교수의 지난해 3월 발표를 일축한 경위도 밝혀야 한다. 갈팡질팡하며 오히려 불안감을 키운 이후의 과정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식약처장이 “국민들께 불안을 안겨드려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정부는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국내 유통 중인 고위험 화학물질은 1300종이 넘지만 정부가 관리하는 물질은 100종이 안 된다. 그마저 업무는 환경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로 분산돼 있다. 관련법도 제각각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살충제 계란’ 후속 대책을 설명하면서 체계적인 화학물질 관리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 별 것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떨었으니 이제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