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 deep] “복지사업도 예타 조사를” “경제성 따져봐야 무의미”

입력 2017-10-02 05:00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사업은 예비타당성(이하 예타) 조사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사업의 효과를 미리 계산해 보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국민 혈세 낭비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제도 필요성 자체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예타 조사를 거치지 않은 정부의 아동수당과 최저임금지원 사업을 두고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는 야당의 논리도 이에 기반한다.

다만 예타 조사를 할 필요가 거의 없는 사업도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유아 1명당 매달 기저귀 값으로 10만원을 나라에서 지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비용은 10만원이고, 이로 인한 편익도 10만원이다. 결국 비용편익 계산은 ‘0’이 된다. 정부는 이처럼 예타 실익이 없는 사업 일부를 예타 면제대상에 포함하는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이다. 이번 정기국회는 예타 없이 편성된 일부 복지사업과 예타 면제사업 확대라는 두 가지 쟁점을 둘러싼 공방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타 생략된 아동수당·최저임금지원

야당이 예타 생략을 문제 삼는 아동수당은 내년 7월부터 0∼5세 아동을 키우는 집에 월 1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내년 예산으로 1조1009억원이 책정됐는데, 이듬해부터는 3조원가량의 예산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임금지원은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이다. 2조9708억원이 배정됐다.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인 김광림 의원은 지난 8월 의원총회에서 “총사업비가 500억원을 넘는 데도 예타 조사를 거치지 않은 항목들이 수두룩하다”며 절차적 공방을 예고한 바 있다.

예타 제도는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대형사업의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예산낭비를 막는다는 취지에서 1999년 도입됐다.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당초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대상으로 시작됐지만 2009년 사회복지를 비롯한 대다수 분야가 대상에 포함됐다. 아동수당과 최저임금지원 사업도 원칙적으로는 예타 대상에 해당한다.

반면 정부는 두 사업이 예타 면제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예타 관련 규정에 따르면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의 경우 사업계획이 수립되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경우에 한해 예타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출산과 대량실업 우려라는 긴급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이란 설명이다.

절차 논란 제도개편으로 이어질까

아예 예타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복지·일자리 사업처럼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만 판단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해선 기존 예타와는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일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현금이나 현물을 직접 지원하는 사업의 경우 비용과 편익은 같을 수밖에 없어 경제성을 따지는 게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기재부가 지난달 발표한 예타 제도 개편안에 ‘단순 소득이전 사업’을 예타 면제대상에 새롭게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것도 이 때문이다. 복지·일자리 사업의 상당수가 단순 소득이전 사업인 점을 고려하면 기재부 개편안은 해당 분야 사업의 예타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단순 소득이전 사업은 2009년 시행령 개정으로 예타 면제대상이었으나 2011년 개정과정에서 삭제된 바 있다.

경제성만으로 평가하기 힘든 사업을 위한 예타 평가방식을 새롭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연구기관인 민주연구원은 2015년 “사회복지분야 사업에 대한 적절한 평가방법이 마련되지 않은 채 예타 조사를 강화하는 경우 필요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면제대상을 확대할 경우 대중영합적인 복지사업 남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는 “경제구조상 향후 복지지출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예타 기준을 완화하면 그만큼 국민 세금이 숙고 없이 엉뚱한 곳에 쓰일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시범사업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일부 사업을 예타에서 제외하는 대신 시범사업을 운영해본 뒤 정책의 수정·확대·폐기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범사업을 펼치고 결과를 평가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 정책이 적기에 시행되지 못할 수 있다는 반박도 나온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