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무기개발자의 세 가지 눈물

입력 2017-09-27 19:01 수정 2017-09-27 22:18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세 가지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첫 번째,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십 년간 연구한 무기들이 제대로 성능을 보여줬을 때다. 수차례 시범발사에서 무던히 속을 썩였던 무기가 어느 날 벙긋 제 모습을 과시할 때의 감격을 연구자들은 잊지 못한다. 사석에서 만난 한 연구원은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참지 못해 머쓱해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이 눈물은 감격과 감사의 표현이다.

지난 6월 23일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들은 눈물을 흘렸다. 안흥시험장에서 사거리 800㎞ 지대지 탄도미사일 ‘현무-2C’가 힘차게 솟구친 뒤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자 눈물을 흘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장을 직접 찾았던 터라 이들의 감격은 더 컸다. 수년간 미사일 개발에 매달려온 고된 시간이 보상됐다는 안도감도 벅차게 밀려들었을 것이다. 우리 미사일 개발 역사가 굴곡이 적지 않았던 점도 이들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으리라.

‘백곰’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백곰은 1978년 9월 26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우리나라 첫 지대지 탄도미사일이다.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이경서씨는 ‘백곰, 도전과 승리의 기록’이라는 책에 이렇게 기록했다. ‘백곰이라는 이름을 접할 때면 나는 아직도 가슴이 뛴다. 백곰은 수백명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밤낮과 휴일을 잊고 여러 해 애오라지 여기에만 매달려 개발해낸 비밀 병기이자 당시에는 최첨단 무기였다.’

ADD의 국산 유도미사일 백곰 개발 프로젝트는 1981년 신군부에 의해 ‘사기극’이라고 매도당했다. 낡은 미국 미사일에 페인트만 칠한 가짜라는 주장이었다.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는 중단됐고 연구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를 재개한다. 현무 개발의 시작이다. 백곰에서 축적된 기술이 기반이 됐다.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미국의 견제로 사거리와 탄두 중량이 제한된 채 미사일 개발 작업을 해야 했다.

두 번째 눈물은 좌절과 참회의 눈물이다. 명품 무기로 알려졌던 K계열 무기들에서 숱한 실험 실패와 결함을 경험하기도 했다. 온 힘을 쏟아부었지만 기술적인 한계나 순간적인 실수로 소중한 산물이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7월 24일 차세대 군단급 무인정찰기가 첫 시범비행에서 이륙 도중 추락했을 때 연구원들이 흘린 눈물은 두 번째에 속한다. 숱한 밤을 지새우며 심혈을 기울여온 차기 군단 무인기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아찔한 사안이었다. 테스트 안테나 운용법을 꼼꼼하게 살펴보지 못한 연구팀의 실수였다. 이 연구팀은 눈물만 흘린 것이 아니다. 과실 책임으로 방사청 방위사업감독관실로부터 67억원을 배상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연구원들이 의도치 않은 실수에 이 많은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지는 논란이 되고 있다.

세 번째 눈물은 ‘비리행위자’ 또는 ‘이적행위자’로 불릴 때 나온다. 요즘 방위사업에 종사하거나 무기 개발을 하는 사람들은 직업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패 온상의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구·개발의 전문성이 무시되고 법규와 절차적 잣대만 적용해 비난할 때는 모욕감을 느끼기도 한다. 무기 획득 과정에서의 비리는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적행위로 불릴 만도 하다. 유사시는 물론 평시에도 장병들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거나 군 작전에 치명적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오류와 실패는 용인돼야 한다.

최근 방산비리 수사에서 ‘성실 실패’와 ‘비리’가 구분되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 실패와 역량 부족이 비리로 매도되는 분위기에서는 우리 손으로 우리가 쓸 무기를 개발하자는 의욕이 꺾이기 쉽다. 비리자로 낙인찍히기보다 외국산 제품을 들여오는 것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어렵게 우리 기술로 첨단 무기를 개발해온 동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옥석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 무기 개발 연구자들이 첫 번째 눈물을 더 많이 흘리도록 격려해줄 필요가 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