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연일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며 긴장감이 감돌고 있던 지난 21일, 인천 강화군 교동면에서 만난 실향민 최봉렬(86)씨는 연산군 유배지 인근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며 카랑카랑한 어조로 말했다.
황해도 배천군 연백평야가 고향인 그는 6·25전쟁 당시 삼형제가 피난 나왔다. 형 둘은 이미 고인이 됐고, 부인마저 지병을 앓다 7년 전 숨졌다. 국가에서 주는 지원금 등 매월 51만원 정도를 받아 이 중 20만원은 사글세로 내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최씨는 “아들 1명과 딸 2명이 출가해 생활하고 있다”며 “며느리 밑에서 눈칫밥을 먹기 싫어 고향이 보이는 교동도에 들어와 품을 팔아먹고 살지만 돈이 없어 틀니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6·25전쟁 당시 많은 실향민이 몰려왔었다고 어른들로부터 들었다는 교동면 상용리의 최호성(66)씨는 “얼마 전 고추를 따고 있는데 4년 전 이웃으로 이사 온 80대 실향민 부부가 하염없이 북쪽 하늘을 쳐다보는 것을 바라보자니 마음이 아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북쪽이 고향인 이들이) 고향을 보겠다며 교동도로 이사 오는 것을 보고 고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 생각했다”며 “방 하나에 식구 여럿이 살면서 다시 고향에 가기만을 기다렸을 6·25전쟁 직후의 실향민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교동도는 북한과 직선거리로 2∼3㎞ 떨어져 있다. 통일이 된다면 북쪽의 많은 이들이 교동도로 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최씨는 “임진강 하구에서 강 위에 누워만 있어도 올 수 있는 곳이 교동도라는 얘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교동면 사람들은 교동도가 ‘평화의 섬’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통일이 되거나 상황이 좋아지면 교동도에 평화산업단지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북한과 가깝다 보니 교동도에 단지를 만들면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 교동도로 출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상진 교동면 부면장은 “교동도가 강화 본섬과 연결되는 교동대교가 개통된 뒤 수도권 지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며 “아직은 구상 수준이지만 인천공항에서 강화도를 거쳐 해주로 가는, 그리고 서울에서 강화도를 거쳐 해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실현될 날이 꼭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으로 이른바 ‘시내’로 불리는 대룡리의 이장 유태선(62)씨는 “교동대교 개통 이후 주말에만 관광객을 상대하는 점포들이 늘고 있다”며 “공기가 좋고 서울에서 가까워 귀농인구도 증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교동도에선 분단의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날 면사무소 2층에서 열린 이장단회의에서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지석리 해안 철책선에서 마을 쪽으로 건설 중인 높이 3m, 길이 300m 규모의 콘크리트벽 공사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장을 확인해보니 군(軍)의 철조망과 한국농어촌공사가 새로 세운 콘크리트벽 사이에는 군용차량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이 나 있었다. 북한 군인이나 탈북자들이 교동도로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한 벽이라지만 주민들은 “벽 위에 철조망을 치는 것만은 절대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교동도 이장들은 “교동도에만 3중으로 철책선을 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교동도를 감옥으로 만들려는 것이냐”고 따졌다.
교동도 사람들의 불만은 또 있었다. 박근혜정부 당시 북한 쪽을 향해 확성기가 설치되면서 북쪽에서도 교동도를 향해 엄청난 출력의 확성기를 설치해 대남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쪽의 대북방송과 북쪽의 대남방송이 이른 새벽부터 흘러나와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심하다는 얘기다.
권혁우(80) 노인회장은 “양쪽 확성기의 출력이 높아 아침마다 어수선하다”며 “계속 방송할거면 같은 소리를 반복하지 말고 차라리 뉴스를 내보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교동면 인사리 이장 황기환(52)씨는 “2015년 군 당국이 주민들과 협의할 때는 군부대 확성기는 전시 상황에서만 사용하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확성기의 위치도 이동식으로 한다고 했지만 고정식으로 운영하고 있어 시끄러워 살 수 없을 지경”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주민들은 또 교동도에 서해5도와 같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서해5도특별법에 따라 연평도 등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형 농기계 구입비 보조금이나 건물 개축비 지원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보고 있으나 교동도는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는 것이다.
김종필(65) 이장단 단장은 “서해5도처럼 지원받으면 젊은이들이 많이 올 것”이라며 “북쪽에서는 숭어도 잡고 망둥이도 잡는데 우리는 왜 못 잡게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국이 해안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어 섬에 살면서도 생선을 사먹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난정2리 새마을지도자 방부일(46)씨는 “북한 사람들이 이쪽으로 많이 내려오고 지뢰 등이 발견되다보니 그럴 것”이라며 바닷가를 막아놓은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3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고 드론도 띄울 수 없는 상황이어서 사실상 주민들은 감옥생활을 한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오전 4시30분 ‘딩동댕∼’ 하고 울리는 차임벨 소리로 하루를 시작해 지겹도록 대남방송을 들으며 살아가는 이들. 섬 전체 둘레 37㎞ 중 남쪽 일부를 제외하곤 온통 철책속에 갇힌 채 살고 있는 이들. 교동도 주민들은 누구보다 더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권 관광객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편에 살고 있는 북녘 동포도 기꺼이 반겨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교동도엔 대남방송이 쩌렁쩌렁하고, 북쪽 바다는 콘크리트벽과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추석에 교동도에서 보게 될 둥근 달은 올해도 여전히 철조망 위에 걸쳐 있을 수밖에 없을 듯했다.
교동도=글 정창교 기자, 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cgyo@kmib.co.kr
[精 나누는 한가위] 철조망 위 둥근달은 하나인데…
입력 2017-09-3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