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르페디엠(carpe diem)이다, 욜로(yolo)다 해서 현재를 즐기고 한번 사는 인생이니 나만을 위해 살자는 풍조가 만연한 듯했다. 시류에 편승한 TV에는 온통 먹고 마시고 여행 다니는 프로그램뿐이다.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도 안 되는 나라에서 4만 달러가 훨씬 넘는 나라보다도 더 높은 소비행태가 일반적인 것처럼 모든 미디어가 경쟁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팟캐스트라는 인터넷 콘텐츠를 기반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한 프로그램에서 분수에 비해 과한 낭비적 소비를 ‘스튜핏(stupid)’, 아껴 쓰기 위한 노력을 ‘그뤠잇(great)’이라고 지칭하는 용어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절약이 사회적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과거 고도 경제성장 시절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익숙한 용어이지만 언젠가부터 낯설게 느껴지던 절약의 재등장은 여러 측면을 시사한다.
8월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는 1400조원을 넘어섰다. 2012년 905조원에서 5년 사이 약 55%가 증가했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5.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 평균치인 72.4%보다 높다. 5000만 인구로 보면 평균적으로 국민 1인당 2800만원의 빚을 갖고 있고 4인 가구를 기준으로 한다면 가구당 부채가 1억원을 훌쩍 넘는 것이다.
특히 다중채무자이면서 신용등급 7∼10에 해당하는 저신용이거나 혹은 하위 30%에 속하는 저소득인 취약차주의 부채가 올해 1분기 만에 9000억원이나 증가했고, 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넘고 부채 대비 자산평가액 비율이 100%를 초과해 고위험가구로 분류되는 계층의 부채규모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앞으로도 가계의 소비여력이 나아지기 어려운 현실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의하면 50대 가구주의 평균 부채는 8385만원이고 자영업자 가구의 부채는 평균 9812만원으로 1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30세 미만 가구주의 부채는 94.7%가 금융부채로 나타났다. 전체 부채 보유 가구의 약 70%가 원금상환의 부담을 느끼고, 이 중 약 75%가 실제로 소비 지출을 줄인다고 응답했다. 세대별 업종별로 빚에 눌려 가계의 소비가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합리적 절약이 트렌드로 떠오른 것은 무관하지 않다.
부채를 통한 소비의 증가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단기적으로 소비가 증가하면 총수요가 증가하게 되므로 국내총생산이 증가하지만 장기적으로 계속해서 빚으로 충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제결제은행이 1990년부터 25년간 54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어가면 오히려 거시경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국가별로 상이한 여건을 고려한다면 수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임계치를 넘어서면 부채를 통하여 소비를 진작시키는 순기능보다 소비를 위축시키는 제약으로서의 역기능이 압도하게 된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우리의 가계부채 수준은 이미 소비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인다. 여기에 인터넷 은행까지 등장해서 대출도 휴대전화의 비밀번호 네 자리로 간단히 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젊은 세대들이 과시적 소비에 현혹돼 빚잔치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욜로로 즐기기에는 너무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 취약계층에 도덕적 해이만 부추기는 일방적 빚탕감 정책은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 옛말처럼 부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장기적으로 지속적으로 빚을 갚아 나갈 수 있도록 부채상환능력을 배양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빚이란 줄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각자의 여건에 맞게 주체적으로 자원배분을 하면서 삶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훈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시평-차은영] 합리적 절약의 미학
입력 2017-09-26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