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박지원·홍준표… “MB 국정원, 여야 정치인 전방위 공작”

입력 2017-09-25 21:47 수정 2017-09-25 23:32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검찰청에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이명박(MB)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당시 여야 정치인들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비판 활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조직적인 여론전을 기획·실행한 사실도 밝혀졌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해 정치관여 및 업무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할 것을 권고했다.

25일 국정원 개혁위에 따르면 ‘원세훈 국정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정치인, 교수 등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성향을 불문한 심리전을 펼쳤다. 국정원은 2011년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였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카이스트(KAIST) 경쟁체제 도입과 4대강 사업을 비판하자 이를 ‘정치교수의 선동’으로 규정했다. 국정원은 트위터를 통해 조 교수를 ‘양의 탈을 쓰고 체제 변혁을 노력하는 대한민국의 늑대이자 적’이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선 ‘강력 규탄 사이버심리전’을 전개했고, 당시 인천시장이던 송영길 민주당 의원에 대해서는 ‘인천시장 종북 행각 규탄 전략 심리전’을 펼쳤다.

당시 여당 인사들도 국정원의 ‘작전 대상’이었다. 국정원은 2011년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현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해 “자꾸 총부리를 아군에게 겨누고 있다. 혼자 정치하려느냐”는 글을 트위터에 게재했다. 국정원은 ‘보온병으로 꺼져가는 본인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것 같은데… 중용해선 안 될 인물’(안상수 창원시장) ‘언제든 뒤에서 칼을 꽂을 수 있는 회색분자’(원희룡 제주지사) 등 원색적 비난 글을 쏟아냈다.

곽노현 서울교육감, 정동영 천정배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 정두언 권영세 전 한국당 의원, 최문순 강원지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등도 국정원의 ‘심리전 대상’이었다.

당시 국정원 심리전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국면 ‘돌파’였다. 국정원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009년 6월 ‘盧(노무현) 자살 관련 좌파 제압논리 개발·활용계획’ ‘정치권의 盧 자살 악용 비판 사이버 심리전 지속 전개’ 등 2건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국정원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책임을 ‘본인의 선택이자 측근·가족의 책임’으로 돌렸고, 노 전 대통령을 ‘재임 중 개인적 비리를 저지른 자연인’으로 폄훼하는 논리를 만들어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 뿌렸다.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인 2011년 5월에는 어버이연합과 ‘협조’해 가두시위를 열고, 추모 분위기에 비판적 내용의 게시물을 인터넷에 올렸다.

국정원은 또 보수성향 매체 및 보수단체를 동원해 ‘언론 공작’도 벌였다. 국정원은 보수논객 변희재씨가 대표를 맡은 극우성향 매체 ‘미디어워치’의 창간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고, 진보 진영 인사에 대한 비판기사를 실었다. 국정원은 삼성과 한전 등 36개 민간기업·공공기관에 미디어워치 광고지원을 요청했으며, 미디어워치가 2009년 4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약 4억원 가량의 기업 광고비를 수주했다고 개혁위는 밝혔다. 국정원은 또 이 시기에 ‘자유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 ‘자유주의진보연합’ 등 보수단체 명의로 일부 중앙일간지에 ‘시국광고’를 싣게 하고 5600만원을 광고비로 집행했다.

개혁위는 국정원이 집행한 광고비에 원 전 원장의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가 있다고 봤다. 개혁위 관계자는 “국정원 직무와 관계가 없는 광고비 지원 자체가 불법이므로 횡령·배임죄가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최승욱 정건희 김판 기자 applesu@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