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면 이긴다”… 아베, 조기총선 카드 빼들다

입력 2017-09-26 05:03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5일 기자회견에서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왼쪽 사진).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신당 이름을 ‘희망의 당’으로 확정하고, 자신이 당 대표를 맡겠다고 밝혔다. AP뉴시스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일본 총리가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 계획을 25일 공식적으로 밝혔다. 임시국회가 소집되는 28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음 달 22일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다. 아베 총리의 라이벌인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신당 ‘희망의당’을 26일 출범시켜 집권 자민당과 맞붙는다. 일본 정국이 선거 체제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회 해산을 “국난 돌파 해산”으로 규정했다. 그가 말한 국난은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와 북한의 위협이다. 아베 총리는 “북한 문제 대처에 관해 국민에게 묻고 싶다”며 “선거에서 신임을 얻어 힘차게 외교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북한 이슈와 함께 총선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2019년 소비세 인상에 따른 세수 증가분을 나라빚 상환 대신 유아교육 무상화 등에 쓰겠다는 방안이다.

이런 명분은 급조한 인상이 짙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결단을 내린 막후의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10일 아베 총리는 골프장에 있던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을 급히 불러 중의원 해산에 대해 물었다. 아소 부총리는 “지금이라면 이길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는 내년 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3선에 성공하려면 그전에 총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두 사람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개헌 세력’이 내년 중의원 임기 만료까지 개헌안 발의를 이뤄내기가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연내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에서 이긴다면 참의원 임기 만료(2019년)까지 시간을 1년 더 벌 수 있다.

해산 결정을 앞두고 북한 정세가 최대 변수였다. 아베 총리는 “북한이 당분간 대화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은 낮고 경제 제재 효과는 3개월에서 반년 뒤부터 나오며, 그동안은 북·미 무력충돌 가능성이 낮다”는 보고를 받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선거 구도는 자민·공명당 연립여당, 고이케 지사 신당(희망의당), 민진당을 비롯한 범야권이 맞붙는 3파전이 될 전망이다. 복병은 고이케 신당이다. 고이케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에 진정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창당 이유를 밝혔다. 주요 정책으로는 행정 개혁, 포스트 아베노믹스 성장전략, 개헌 등을 내세웠다.

고이케 신당에는 전·현직 의원과 현직 차관 등 사람들이 속속 모이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신당이 이번 선거에 150명의 후보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수도권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고이케 지사는 지난 7월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지역정당 ‘도민퍼스트회’로 압승, 아베 총리와 자민당에 역사적인 참패를 안겼다. 고이케 신당이 빠른 속도로 전열을 갖춰 수도권 공세에 나설 경우 자민당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에 자민당 일각에선 도쿄도의원 선거 패배가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현재 중의원은 전체 475석 중 연립여당이 323석(자민 288, 공명 35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선 선거구 조정으로 전체 의석이 465석으로 줄어든다. 자민당은 지난 총선과 같은 압승은 어렵고 어느 정도 의석수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승패 기준에 관해 “연립여당이 과반(233석 이상)이 안 되면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