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각종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관련자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구치소에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26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키로 했다. MB정부 국정원이 벌인 정치공작이 청와대까지 연결될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수사팀은 25일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과 신승균 전 국익전략실장 등 4명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들은 모두 국정원 2차장 산하 직원이다. 그간 3차장 산하 심리전단 위주로 진행됐던 검찰 수사가 국정원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앞서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당시 원 전 원장이 박 시장 견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 민병환 2차장 산하 국익전략실이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안’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 등 문건을 작성하고 관련 심리전 활동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특히 반값 등록금 관련 문건은 국익전략실을 뜻하는 ‘B실 사회팀’에서 작성됐고 추 전 국장은 이 문건의 작성팀장이었다. “야권의 등록금 공세 허구성과 좌파 인사들의 이중처신 행태를 홍보자료로 작성해 심리전에 활용함과 동시에 직원 교육 자료로 게재하라”는 내용이 담긴 해당 문건엔 추 전 국장 이름도 적혀있다.
추 전 국장과 신 전 실장은 지난 19일 박 시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을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고발할 때 피고소·고발인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추 전 국장은 MB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도 관여했고 박근혜정부에선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비선 보고를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원 전 원장은 재직 당시 이처럼 광범위한 국정원의 국내 정치 공작을 진두지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26일 그를 소환해 사이버외곽팀 운영과 관련한 지시 및 공모 여부, 외곽팀에 지급된 예산의 출처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최대 48개에 달하는 사이버외곽팀 운영에 70억원가량의 국가 예산을 부당하게 집행한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앞서 같은 혐의로 구속된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사이버외곽팀 운영 과정에서 원 전 원장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 대부분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원 전 원장 조사 후 이르면 이번 주 중 민 전 단장을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의 원 전 원장 조사는 이 전 대통령과 MB정부 청와대 인사들로 향하는 수사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재임 시절 이 전 대통령을 수시로 독대한 정황을 포착했다. 실제 블랙리스트 등 국정원 정치공작 문건이 청와대 지시로 작성되고 보고된 사실이 TF조사 결과 확인됐다. 이 때문에 원 전 원장 소환조사는 한 차례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할 범위가 방대해 사안별로 필요할 때마다 불러 조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검찰은 블랙리스트 피해자 중 한 명인 배우 김규리씨를 불러 조사했다. 김씨는 배우 문성근씨, 방송인 김미화씨 등 4명과 함께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 박근혜 전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 8명을 고소했다. 이들은 이 전 대통령 등 피고소인들에 대한 출국금지 신청서도 함께 제출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檢, 이번엔 원세훈 정치공작 조사… MB 수사 분수령
입력 2017-09-2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