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인 소설가 황석영(74)씨와 방송인 김미화(53)씨가 25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간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 개선위원회’에 나와 피해 조사신청을 했다.
황씨는 이날 서울 종로구 KT빌딩의 진상조사위 사무실에 출석해 조사신청을 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일찌감치 극우 세력에게 블랙리스트조차 필요 없는 불온한 작가로 찍힌 채 살아온 터라 새삼스럽게 피해를 언급하는 게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사신청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국정원에서 작성한, 저에 관한 많은 서류를 보면서 국가가 커다란 권력을 이용해 개인을 사찰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우 불쾌하고 화가 났다”고 밝혔다.
황씨는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1년 내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연대’ 공동대표를 맡은 뒤 과거 공안 당국이 나에 대해 일방적으로 주장했던 내용이 교묘하게 짜깁기돼 광범위하게 퍼졌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작사를 한 ‘임을 위한 행진곡’은 김일성의 지령을 받아 공작금을 받고 만든 것이라는 등 허무맹랑한 사실이 유포됐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에서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성명을 낸 뒤 관리와 억압이 노골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 검찰은 매년 내 금융거래 정보를 열람했고, 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드라마 등 5건 계약이 줄줄이 취소됐다”고 증언했다.
황씨는 “국가가 밀실에서 ‘누구누구를 배제시키라’고 하면서 (문화예술인의) 고립을 유도하고 ‘왕따’시켰다”며 “문화 야만국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꾸준히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문학계 원로다.
김씨는 “검찰이 제공한 자료를 보면서 ‘과연 이것이 내가 사랑했던 대한민국인가’라는 생각을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검찰 조사 중) 청와대 일일보고 등 국정원 보고서를 보게 됐는데 처음에는 ‘연예인 건전화’처럼 표현이 다소 말랑말랑했지만 갈수록 과격해지다가 나중에는 ‘골수좌파’ ‘종북세력’ ‘수용불가’라는 표현까지 나왔다”며 “제가 어디서 수용불가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19일 검찰에 출석해 이명박정부의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지난 7월 말 출범한 진상조사위는 이날 접수된 2건을 포함해 56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황석영·김미화씨, 피해 조사신청 “MB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화 야만국 치부 드러낸 것”
입력 2017-09-25 21:50 수정 2017-09-25 2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