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을 외치는 여권의 칼끝이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방송 장악 및 블랙리스트 작성,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등에 MB정부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수사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지난 9년간 보수정권에서 쌓인 적폐의 시작이 이 전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깊게 깔려 있다. 적폐의 뿌리를 찾아 도려내기 위해서라도 관련 의혹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게 여권 생각이다. 다만 당이 직접 나서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한 사정(司正) 작업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게 민주당 의원들 설명이다. 원내 지도부는 이 전 대통령 문제를 별도로 논의한 적도 없고, 구체적인 고발 목표도 없다고 했다.
개별 의원들 사이에선 그러나 ‘올해 국정감사 등을 통해 MB정부 적폐는 반드시 바로잡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과거 문제들을 추적하다 보면 근원이 이 전 대통령에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논리다. 실제 MB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주도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진 사실이 알려졌고, 방송장악에 나선 정황도 확인되고 있다. 여론 조성을 위한 국정원 댓글부대 활동도 시작은 MB정부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25일 “블랙리스트를 통한 사상 검증 등 현 적폐의 구조를 만들어놓은 게 사실상 MB정부였고, 그 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아 운영한 게 박근혜정부”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으로 심판을 받았지만, 적폐구조를 만든 당사자는 조용히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 전 대통령이 관여했던 위법사안을 제대로 평가하고, 필요한 응징을 가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여당 중진 의원도 “당에서 딱히 이 전 대통령을 찍어놓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위법한 지시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MB정부 시절 이른바 ‘4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 문제도 불안한 뇌관이다. 감사원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이미 지난 6월 4번째 감사에 착수했다. MB정부 방산비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다. 수십조원을 투자해 막대한 손실만 초래한 자원외교를 파고드는 여권 공세도 매섭다.
청와대는 일단 거리를 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일일 현안보고에서 관련 언론 보도를 보고받았지만 답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각 부처가 적폐청산 작업을 하고 있고, 결과에 따라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면 검찰이 수사를 하는 것”이라며 “청와대는 기획하거나 지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용택 강준구 기자 nyt@kmib.co.kr
“보수정권 적폐의 시작은 MB”… 與, 청산 벼른다
입력 2017-09-25 18:01 수정 2017-09-25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