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공허한 승리’… 연정구성도 험로

입력 2017-09-25 18:33 수정 2017-09-25 22:28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4연임을 확정지었지만 마냥 웃을 수만 없는 승리였다. 영국 BBC방송은 “공허한 승리”라고 했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승리는 했지만 대가가 컸다”고 지적했다.

24일(현지시간) 치러진 연방하원의원 선거에서 메르켈이 이끄는 중도우파 기독민주·기독사회당(CDU·CSU) 연합은 3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1위였지만 1949년 이후 가장 낮은 득표율이었다. 직전 2013년 총선에서 얻은 41.5%에 비해서도 8.5% 포인트나 떨어진 수치다.

메르켈의 유력 대항마였던 마르틴 슐츠 전 유럽의회 의장은 자신의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이 20.5%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으면서도 메르켈을 “가장 큰 패배자”로 불렀을 정도다.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침체에 빠진 가운데 극우성향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12.6%의 득표율로 제3당으로 올라섰고, 친기업 성향 자유민주당(FDP)은 10.7%로 연방의회에 복귀했다. 8∼9%의 녹색당과 좌파당을 포함하면 1950년대 이후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6개 정당이 난립하는 국면을 맞게 됐다. 슈피겔은 “중도 정당의 퇴조 속에 급진 정당이 대약진했다”고 평가했다.

메르켈은 그동안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해왔지만 AfD가 의회 입성을 넘어 제3당 자리까지 차지하면서 메르켈 집권 4기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당장 연정 구성이 불투명하다.

슐츠는 “선거 결과는 (사민당이) 야당을 하라는 것”이라며 연정 거부의사를 밝혔다. 때문에 기민·기사-자민-녹색당의 ‘자메이카 연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자메이카 국기 색과 세 정당의 상징색(검정 노랑 초록)이 같은 데서 만들어진 말이다. 이 경우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지만 난민 문제와 조세 문제,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각 당 입장이 달라 연정 협상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독일 경제연구소 IFO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클라우스 볼라베는 “자메이카 연정을 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새로운 총선을 치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글=맹경환 기자,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