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의 의미는 명확하다. 김정은은 문재인정부의 대화 제의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불사 위협이든 개의치 않고 ‘핵 무력 완성’이라는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이란식 세컨더리 보이콧과 한층 강화된 유엔 안보리 제재가 과거보다 효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고지를 눈앞에 둔 김정은의 의지를 꺾지는 못할 것이다. 제재로 인해 경제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대부분의 피해는 인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체제 유지를 절대적 전제조건으로 여기는 김정은과 소수의 엘리트들은 이를 감수해야 할 희생 정도로 여길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이제 북한의 핵과 함께 살 수밖에 없게 됐다. 엄청난 살상무기가 북한의 손에 들어가게 된 데 대해 좌절감에서부터 공포까지 강렬한 감정이 표출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이성적인 인식이 우선돼야 한다. 북한의 핵 보유는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갖는가. 북한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완벽한 억제력을 갖게 됐다. 북한이 핵에 더해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미국이 북한에 군사적 조치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방사포와 스커드·노동미사일 등으로 무장해 이미 상당한 억제력을 보유한 북한이 그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핵 보유로 남북한 간 군사력 균형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힘의 균형 파괴’는 북핵 공포의 최대 원천이다. 한국은 핵이 없으므로 미국을 제외하고 남북한 간의 전력만 따진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고 한·미동맹을 철회하거나 약화시켜 한반도 위기 시에도 방위공약을 지키지 않을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현실성은 떨어진다.
북핵 공포의 두 번째 원천은 북한이 핵 카드를 휘두르며 미국에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한·미동맹을 해체하지 않으면 미국 본토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볼모로 전락했다는 ‘핵 인질론’이다. 역사적 사례를 보면 냉전기 미국이 소련 핵의 사정거리에 있었지만 미국 대외정책이 소련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 소련도 마찬가지다. 핵을 가졌다고 해서 상대방이 모두 겁을 먹고 굴복할 것이라는 건 피상적인 전제다. 특히 미국 같은 초강대국은 북한을 응징할 여러 수단과 힘이 있다. 미국이 북한의 강압에 굴복해 동아시아 안보의 축인 한·미동맹을 해체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성이 매우 낮다.
전술핵 재배치가 군사적 측면에서 효용이 없다는 중론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계속되는 배경에도 북핵에 대한 무조건적 공포가 있다. 하지만 핵은 핵으로만 억제할 수 있다는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연구 결과가 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밀유도탄(PGM) 개발 등 재래식 무기들이 첨단화되면서 이제 핵억제를 대신할 수 있는 비핵억제의 가능성이 본격 검토되고 있다. 고성능 미사일 수십 개를 정밀 유도해 폭격할 경우 전술핵무기와 유사한 파괴력을 낼 수 있게 됐다.
국방부 김정섭 박사는 ‘한반도 확장억제의 재조명’ 논문에서 한반도에서는 핵을 통한 대량 보복에 의존할 필요 없이 압도적인 한·미 연합의 재래식 보복 능력만으로도 정권 붕괴 위협을 통해 북한을 충분히 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핵 자체보다도 북핵에 대한 과도하고 비이성적 공포가 경제와 사회에 더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북한 핵 능력 급진전으로 인한 최근 안보환경 변화와 대북 억제 전략을 소상하게 국민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 위협을 미국의 핵우산과 재래식 전력 보강을 통해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배병우 편집국 부국장 bwbae@kmib.co.kr
[돋을새김-배병우] 지나친 북핵 공포도 문제다
입력 2017-09-25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