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산하기관 임원 300여명을 상대로 퇴출 여부를 가리기 위한 ‘살생부’를 작성하려다 취재가 시작되자 중단했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낙하산’ 인사들을 물갈이하려는 취지로 보이는데 법과 절차, 지휘계통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 운영지원과는 지난 21일 오전 교육부 산하기관을 관장하는 부서들의 사무관 및 서기관급 실무자들을 소집했다. 운영지원과는 부내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차관 직속 조직이다. 운영지원과 인사팀장은 교육부 산하기관의 기관장 22명, 상임이사 7명, 상임감사 18명, 비상임이사 255명, 비상임감사 10명 등 312명의 현황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국립대학병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장학재단, 한국사학진흥재단 등이 이름을 올렸다.
운영지원과는 각 기관의 기관장, 상임이사, 비상임이사, 감사 등으로 구분해 공적과 과실, 잔여 임기, 전문성 등을 평가하고 유임할 인물과 교체할 인물을 가려 보고토록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직원은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교체 여부를 조사하라는 업무 지시가 하달된 것은 처음이었다.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회의 내용을 보고받은 교육부 국장급 간부는 '사실상 블랙리스트를 만들려는 시도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운영지원과를 통해) 내려온 지시여서 거부하기도 어렵고 고민"이라고 말했다.
운영지원과는 국민일보 취재가 시작된 직후인 21일 오후 해당 지시를 취소했다. 최윤홍 운영지원과장은 "단순 현황 파악인데 '교체 필요 직위 검토' 등 표현에 문제가 있었고 오해 소지가 있어 취소했다"고 해명했다.
교육부 내부에선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취임 후 외부에서 들어와 교육부를 장악한 인사가 살생부 작성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과장급 간부는 "운영지원과 차원에서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블랙리스트든 살생부든 뭐라 부르든 교육부 관료 중에선 이런 것들을 만들 이유도 없고 그렇게 대범한 일을 벌일 사람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직원은 "대선 캠프에 발을 담았던 사람들이 자리를 달라고 아우성이란 얘기를 들었다. 이명박정부 초기에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전 정부에서 임명돼 버티고 있는 산하기관 임원들과 서슬 퍼런 새 정부 사이에 끼여 교육부 직원들만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김 부총리와 살생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최 과장은 "인사팀장이 차관에는 구두로 보고한 뒤 진행했지만 부총리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대림 부총리 비서실장은 "장관실에서 지시한 사안이 아니며 부총리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교육부는 내부제보자 색출을 위해 살생부 작성 회의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경위를 집중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단독] 교육부, 산하기관 임원 ‘살생부’ 작성하다 취소
입력 2017-09-24 18:08 수정 2017-09-24 2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