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이 6년 임기를 마치면서 남긴 퇴임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A4 용지 9장 분량의 퇴임사에서 “진영 논리의 병폐가 사회 곳곳을 물들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가치관이 조화롭고 평화로이 공존하는 사회가 돼야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상충하는 가치관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격화돼 거의 위험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주장만 강변하며 다른 쪽 논리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했다. 우리 편 아니면 상대편으로 줄 세워 재단하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만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법부 개혁과 관련해 이런저런 논란이 있었지만 사법부 수장 생활을 마감하면서 흉중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다. 적확하게 들여다봤고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의 쓴소리는 일단 법원 판결에 일부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상식선의 건전한 비판을 넘어 과도한 비난이나 공격을 하는 사례가 최근 자주 발생한 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뇌물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한 한명숙 전 총리의 출소를 전후로 일각에서 재판이 잘못됐다고 법원을 비난해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청구한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법관 독립 원칙은 법관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법관에게 외부세력이 이념을 들이대 압력을 넣거나 관여를 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얘기다. 정치인, 시민단체 등 법원 밖의 인사들이 깊이 새겨들여야 한다. 그의 지적은 법원 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 경제 교육 등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는 낡은 이념 논리에 대한 진솔한 경고이기도 하다. 진보든 보수든 가릴 것 없이 국민 모두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해야 한다는 충고도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히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북 핵·미사일 위기 등 외교안보는 물론 모든 분야의 국내외 상황은 매우 급박하고 엄중하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이제 이념을 떠나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면서 국가위기 극복과 미래발전이라는 큰 틀 속에서 서로 공통점을 찾아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먼저 손을 내밀고 보듬어 안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들부터 솔선수범해 아우름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못한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설] 격화되는 진영 논리 이대론 안 된다
입력 2017-09-24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