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69) 대법원장이 22일 퇴임식을 끝으로 42년 법관 생활을 마쳤다. 떠나는 자리에서 그는 극심한 진영논리와 외부의 부당한 재판 비난 등으로 사법부가 위기에 직면했다고 한탄했다.
양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뒤 박근혜정부를 거쳐 문재인정부 초반까지 6년 간 사법부를 총괄했다. 전날 김명수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통과되면서 후임자 없이 물러나야 하는 상황은 피했다.
양 대법원장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모든 사람을 우리 편 아니면 상대편으로 일률적으로 줄 세워 재단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하고,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강변하면서 다른 쪽의 논리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진영논리의 병폐가 사회 곳곳을 물들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런 풍조 때문에 재판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기만 하면 도를 넘는 비난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폭력에 가까운 집단적 공격조차 빈발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사법부의 당면 위기이자 재판 독립에 대한 중대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양 대법원장은 특히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사법부 방향성에 대해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 외부의 간섭 시도가 심해졌다는 양 대법원장의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도 읽힌다.
일부 판사들이 ‘법원 내부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양 대법원장은 “법관독립의 원칙은 법관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며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로서 법관에게는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할 헌법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국민의 신뢰야말로 사법부의 유일한 존립 기반임을 확신한다”며 “신뢰 증진이 저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이라는 각오 아래 그 방향으로 모든 사법정책의 초점을 맞췄다”고 회고했다. 이어 대법원 공개변론 사건 생중계 등 국민과의 소통 강화, 사실심 심리절차 강화, 평생법관제 정착 등을 나열했다. 그의 공으로 평가되는 대표적 사법정책들이다.
양 대법원장은 상고심 사건 적체와 법관 인사문제 해결을 위해 임기 중 상고법원 도입도 강하게 추진했었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회의 냉대 속에 결국 지난해 5월 법안이 폐기됐다.
양 대법원장의 임기 후반기는 순탄하지 않았다. 그 역시 “단 하루도 마음 놓을 수 없는 가시밭길” “공든 탑이 무너지는 듯한 허탈감” 등으로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명동 사채왕 뒷돈 판사’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 등으로 국민 앞에 머리 숙여야 했고, 올 들어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후배 법관들에게 사퇴 요구를 받기도 했다. 양 대법원장이 풀지 못한 상고심제도 개선, ‘사법부 관료화’ 극복 등은 김명수 차기 대법원장의 숙제로 남았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양승태 대법원장 “진영논리로 재판 비난… 사법부 독립 큰 위협”
입력 2017-09-22 18:06 수정 2017-09-22 2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