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종교사회학자로 인정받던 보스턴대학의 피터 버거 박사가 지난 6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60년대에 미국 사회 문화의 기독교 흐름을 분석해 ‘세속화(Secularization)’ 이론을 내놓았다. 유럽과 미국 사회는 앞으로 세속화를 피하지 못할 것이고 기독교는 점점 사회에서 실제적인 영향력과 사회 통합적 기능이 축소되어 갈 것으로 그는 예견했다. 세속화란 사회와 문화가 종교적 세계관과 상징의 영향과 지배로부터 점점 벗어나는 과정으로, 그것이 진행될수록 종교와 신앙은 공적인 영역에서 영향력과 기능이 줄어들고 개인적인 삶의 영역 안으로 축소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학자들마다 세속화에 대한 정의를 조금씩 다르게 내리지만, 신앙과 종교적 세계관이 공적인 영역에서 설 자리를 잃고 사적인 영역에 관련한 믿음체계로 미끄러져 간다는 점에 있어서는 대부분이 의견을 같이한다. 즉 종교가 점점 사사화(私事化)돼 갈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를 기독교에 적용하면 기독교의 가르침과 세계관이 사회 공적 영역에서 영향력이 미미해지고 개인의 내면생활과 윤리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축소 제한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얼마 전 박성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났다. 박성진 후보자 청문회는 그의 업무 수행 능력과 별개로 그가 지지하는 ‘창조과학’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은 후보자가 비과학적이고 몰상식한 종교 신념을 과학이라 믿기 때문에 장관으로서 부적격하다고 비판했다. 단순하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것을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종교를 점점 공적인 영역에서 제거해 가려는 세속화 현상의 뚜렷한 증후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창조과학이 과학적으로 옳으냐 혹은 창조를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는 전문가들의 토론이 더 필요한 문제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국의 ‘창조과학회’는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신앙과 자신의 전문분야인 과학이란 공적인 영역을 통합해보려는 시도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정확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떠나 적어도 이들의 시도는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주권을 인정하려는, 그래서 그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신앙을 사적인 영역에만 봉인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의 역사적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창조 신앙에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점점 전문 과학 영역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퇴출시키려 한다.
향후 사회는 기독교인들의 어떤 시도가 세계를 더 잘 설명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느냐와 관계없이 신앙이 공적인 영역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미신’ ‘몰상식’ 등의 언어 프레임을 걸어 무차별적으로 공격할지 모른다. “실험실에 들어갈 때 난 신앙이란 옷을 옷장에 넣는다”라고 말한 파스퇴르와 같은 이원적 신앙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종교인이라고 여겨지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거대한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교회와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과 가치를 어떻게 공적인 영역과 전문 영역에서 설득력 있게 소통하고 구현해야 할 것인지를 더욱 고민해야 한다.
신원하 고려신학대학원 원장
[기고-신원하] 박성진 낙마와 한국교회
입력 2017-09-22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