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포비아… “못 참겠다” 소비자 스스로 위험제품 파악·대응 앞장

입력 2017-09-24 20:03

가습기 살균제부터 살충제 달걀, 생리대까지 잇따른 화학물질 사태로 화학제품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정부 규제를 더 이상 믿지 못하는 소비자들은 사실관계 규명을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소비자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들은 정부가 사실 관계를 완전히 규명하기 전에도 문제가 된 화학물질 사안에 대해서는 바로 대응하고 있다. 논란이 생긴 제품은 바로 폐기처분하거나 해당 회사에서 만든 제품 리스트를 공유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변모하고 있다.

여성 전용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네티즌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내가 잘못된 화학물질로 피해를 보면 나만 손해라는 걸 깨달았다”며 “정부가 조치에 나서기 전이라도 논란이 된 제품은 쓰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소비자들의 변화 시기를 짚어보면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로 설명할 수 있다. 1994년 유공(현 SK케미칼)에서 만들어낸 물에 타서 쓰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세정제를 호흡기로 들이마시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제품이다. 1996년 옥시가 이 제품을 본딴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 중에 정부의 실험이나 검증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폐손상 환자들이 늘어나자 2011년에서야 원인파악을 하는 등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현재 월말 기준 1·2단계 피해자는 377명에 이른다.

살충제 계란의 경우에는 정부가 살충제 계란 여부를 공개하자마자 소비자들이 구매한 계란을 모두 버리고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식약처가 ‘09’라고 찍힌 경기도 계란만 피하면 된다는 요지로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전국 곳곳에서 살충제 계란이 적발되는 등 불신을 키웠다. 살충제 계란은 조류독감(AI)의 방역과도 관련되어 AI에 이어 살충제 계란까지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비판을 낳았다.

생리대 사태도 막을 수 있는 것을 크게 키웠다. 여성환경연대가 지난해 10월 생리대의 유해성 여부를 조사했지만 기업들과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지난 8월에서야 여성 까페를 통해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 사용자의 부작용 후기가 올라오면서 사태가 커졌다. 결국 유해물질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깨끗한나라는 환불 절차를 실시했다. 식약처는 그제서야 생리대 유해물질 조사에 나서겠다고 뒷북 대응했다.

직장인 이민하(41·여)씨는 “가습기 살균제 이후로는 정부에서 내놓는 규제를 믿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기엄마 박현진(34·여)씨도 “정부 발표가 나기 전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미리 대응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쌓인 것 같다”며 “앞으로 질병이나 건강에 대한 이슈가 터질 때 정부가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구현화 쿠키뉴스 기자 ku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