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프로냐”.
올해 프로야구 상당수 팀들은 강팀이든 약팀이든 상관없이 불펜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선발진의 호투와 타선의 화력으로 큰 점수 차를 벌여놔도 불펜진의 방화로 순식간에 뒤엎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팬들은 초창기와 달리 투수진이 철저하고 계산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막장을 연상케한 역전패가 계속 나오자 “야구의 질적 수준이 떨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수가 늘어난데다 과거 선동열, 류현진 등 압도적인 선발투수들이 줄면서 불펜진의 체력이 시즌 막판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1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kt 위즈의 경기. LG 선발 데이비드 허프는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뒤 3-1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참사는 이후 8회초부터 시작됐다. kt 타선은 진해수-신정락-정찬헌으로 이어지는 필승조를 공략, 6-3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LG도 반격에 나서 7-6을 다시 만들었다. 하지만 kt는 9회초에만 9점을 내면서 15대 7 대역전승을 거뒀다. 이는 역대 홈팀 9회 최다실점 역전패에 해당한다.
불펜 잔혹사는 1위팀 KIA 타이거즈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 3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9회말 역대 최다 점수 차(6점 차) 역전패를 당했다. 10일 후인 13일 인천 SK 와이번스전에서는 10-5로 앞선 상황에서 선발 양현종을 구원한 불펜진이 무려 10점을 내주며 게임을 내줬다. 이날은 김윤동 임창용 김세현 등 이른바 필승조가 나섰음에도 참사를 막지 못해 충격을 더했다.
전반기 가장 탄탄한 불펜진을 자랑하던 NC 다이노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12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11-4로 앞서다 8회초에만 6점을 내주며 결국 13대 14로 패했다.
각팀의 불펜진이 무력화된 것은 2015년 10개 구단 체제가 출범한 것과 관련이 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9개 구단 체제 128경기에서 144경기로 늘어나면서 선수들의 체력 부담도 커졌다는 것이다. 실제 리그 불펜 평균자책점은 2015년 4.92에서 지난 시즌 5.06, 올해(20일 기준) 5.15로 계속 상승 중이다.
차명석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20일 “시즌 막판에 선수들이 지친 것 같다. 10개 구단·144경기 체제에 구단 및 선수들이 완벽히 적응하기 위해서는 2∼3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과거와 달리 긴 이닝을 선발 투수가 책임지지 못하면서 불펜 투수들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며 “현장 코칭스태프들이 불펜 과부하에 대해 근본적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의 비활동기간 준수를 강조하면서 스프링캠프 시작이 2월 1일로 늦춰진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저연봉·저연차 선수들은 스프링캠프 전까지 마땅히 개인훈련 할 곳을 찾기 쉽지 않다. 훈련은 줄어들었는데 경기 수는 늘어나면서 시즌 막판 체력 저하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허 위원은 “경기 수 증가로 과거 체력이 10이었다면 지금은 11은 돼야 하는데 스프링캠프 시작이 늦어지고 훈련이 줄어들면서 9가 된 셈”이라며 “KBO와 구단, 선수협 등이 저연봉·저연차 선수들의 개인훈련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KBO 수준 추락 ‘막장 드라마’ 왜?… 불펜이 불났다
입력 2017-09-2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