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 ‘저출산 대책’ 뜯어보니… 부처별 ‘나홀로 정책’에 실패

입력 2017-09-20 05:00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처음부터 재정립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3차례에 걸쳐 추진한 저출산 정책들은 일정한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유기적 정책연계에 실패, 저출산 사태 악화를 막지 못했다는 반성이 출발점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5년 단위로 저출산 대책을 제시해 왔다. 1차 대책에 19조7000억원이 투입됐고, 2차 대책에는 60조5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사용된 21조4000억원의 예산까지 합하면 총 101조6000억원이 오롯이 저출산을 막기 위해 쓰인 셈이다. 그러나 저출산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1.17명이었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출산하는 아이 수)은 올해 1.03명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저출산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동안 각 부처가 짜온 관련 사업들을 소극적으로 평가하는 데 그쳤던 기획재정부가 인구경제과를 신설하며 키를 쥐는 모양새다. 기재부는 우선 지난 10여년간 시행된 저출산 대책들을 전반적으로 점검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뜯어보면 악화되는 저출산 지표와는 달리 각각의 정책들은 나름대로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예컨대 ‘자동육아휴직제’ 정책 등으로 지난해 육아휴직자 수는 8만9795명에 달했다. 고용노동부가 목표치로 제시했던 9만명에 육박하는 수치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자동육아휴직제는 출산 후 육아휴직 의사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육아휴직 사용이 자동 신청되도록 하는 제도다. 일·가정 양립문화를 중소기업에 확산하기 위한 정책도 목표치를 초과달성했다. 육아휴직자 중 중소기업 근로자 비율은 목표치인 45.0%보다 많은 46.4%에 달한다.

문제는 개별 정책의 성과가 저출산 사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19일 “부처별로 많은 정책들이 나왔지만 유기적인 정책연계에 소홀했고, 여성의 생애주기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간 육아에만 초점을 맞췄던 정책 범위를 저출산의 근본원인인 청년실업과 주택문제 등으로 확대하고, 기존 육아정책 역시 아동 연령에 따라 더 세밀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1월 발간한 ‘제3차 저출산·고령화사회기본계획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는 13개 정부부처가 제각각 내놓은 정책들이 서로 모순되거나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혼부부 맞춤형 임대주택사업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고,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사업은 지나치게 높은 임대료 때문에 적령기 청년들이 선택하기에 부담스럽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저출산 정책 방향을 제시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윤정 연구위원은 “그동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각 부처정책을 망라해 발표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며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각 부처 간 정책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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