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로 지고 있는데 도루도 하지말라고?

입력 2017-09-20 05:00

지난 17일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 두산이 14-1로 크게 앞선 3회말 삼성 박해민이 2루 도루를 했다. 그러자 투수 더스틴 니퍼트가 박해민에게 삿대질을 하며 흥분했다(사진). 불문율을 어겼다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불문율이 명확하다. 미국 스포츠 잡지 스포팅뉴스는 대표적 불문율로 5가지를 꼽았다. 점수 차가 많이 났을 때 도루나 번트를 해선 안 된다, 상대투수가 노히터 같은 대기록을 세우고 있을 때 기습번트는 금지해야 된다, 홈런을 치고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타구를 오래 응시해선 안 된다고 돼 있다. 반드시 부당한 행동은 보복하고, 시합을 존중하라도 포함됐다.

대표적인 것이 홈런을 치고 난 뒤 하는 배트플립(빠던)의 금지다. 지난해 5월 16일 텍사스 레인저스의 루그네드 오도어는 호세 바티스타(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안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이는 전년도 포스트시즌에 있었던 바티스타의 ‘빠던’으로부터 비롯됐다. 박병호와 황재균은 메이저리그로 떠나기 전 배트플립을 하지 않는 연습까지 했다.

하지만 불문율의 경계는 대단히 모호하다. 실제 몇몇 미국식 불문율은 한국에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배트플립은 한국에서는 극적 효과와 팀 사기를 위해 허용되는 행동이다. NC 다이노스 박석민이나 SK 와이번즈의 김성현은 헛스윙을 한 뒤 제자리에서 빙글 돌곤 한다. 한국에서는 타자의 재밌는 특성으로 보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캔자스시티 로열스 감독을 지냈던 SK 트레이 힐만 감독은 “박석민이나 김성현 같은 행위를 하면 메이저리그에선 바로 갈비뼈를 향해 공이 날아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상대를 모욕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0일 마이애미 말린스는 LA 다저스전에서 벤치 클리어링을 했는데 이유는 5-0으로 앞선 다저스의 타자가 쓰리볼 노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풀스윙을 했다는 것이 발단이었다.

니퍼트의 사례도 한국적 정서로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일반적으로 크게 앞선 팀이 도루를 해선 안된다는 불문율은 들어봐도 크게 뒤처진 팀이 도루를 금해야한다는 것은 낯설기 때문이다. 지고 있는 팀이 상대 수비가 관심 갖지 않을 때 하는 ‘무관심 도루’와 무엇이 다르냐는 지적도 있다. 다만 차명석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19일 “크게 지고 있을 때에도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행위는 좋지 않다. 야구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