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김승철 일본 난잔대 교수] ‘침묵’은 침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표현한 것

입력 2017-09-21 00:01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을 쓴 일본 난잔대 김승철 교수가 지난 9일 도쿄 신주쿠구 신세이카이칸에서 포즈를 취했다.
엔도 슈사쿠의 모습.
일본의 대표적 현대 소설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침묵’(1966)은 17세기 일본을 무대로 신자들의 고난을 다루고 있다. 당시 막부 정권은 기독교인에게 배교를 강요하며 예수의 성화를 공개적으로 밟도록 했다. 이를 ‘후미에(踏繪)’라 불렀는데 성화를 밟으면 살려주고 밟기를 거절하면 죽음으로 내몰았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신학적 질문을 던졌다. ‘사일런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설과 관련해 국내 독자들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다. 원본에는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관리인의 일기)’라는 부록이 있었다는 점이다. 국내 출간된 책에는 이 문서가 빠져있다. 최근 누락된 이 관리인의 일기를 번역하고 엔도 슈사쿠의 문학세계와 삶을 조명한 재일 한국인 신학자의 책이 나왔다. 일본 난잔(南山)대 김승철(59) 교수의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비아토르)이다. 지난 9일 도쿄 신주쿠구 신세이카이칸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이곳은 엔도 슈사쿠가 대학생 시절 기숙사로 사용했던 곳으로, 김 교수는 이날 엔도 슈사쿠 읽기 모임 강사로 방문했다.

김 교수는 “관리인의 일기는 엔도가 ‘사켄요로쿠’라는 역사적 문서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 고쳐 쓰는 방식으로 작품의 대미를 장식한 것으로, 단순히 (작품) 일부가 아니라 최종적 결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사켄요로쿠란 사교(邪敎)를 조사한 기록으로 막부 정권에서 사교로 취급받았던 ‘기리스탄(그리스도인)’에 대해 적은 글이다. 1672∼1691년 신앙을 버렸다고 인정된 기리스탄을 가둬두던 일종의 유폐지가 있었고 이곳에서 배교한 기리스탄을 관리했던 하급무사 가와라 진고베가 남긴 메모 형식의 실제 문서다.

관리인의 일기엔 소설에 등장했던 기치지로가 그리스도 상을 끝까지 지니고 있었다고 나온다. 기치지로는 가슴 깊은 곳에 신앙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기치지로에게 새겨진 예수의 흔적(갈 6:17)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며 “엔도는 이 관리인의 일기를 통해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며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엔도는 관리인의 일기를 기록함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 번 찾아오시면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소설 침묵은 루터적”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칭하셨다면 끝까지 구원하신다는 마르틴 루터의 칭의론과 맥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침묵이란 소설 제목도 원래는 ‘양지의 냄새’였다고 김 교수는 소개했다. “엔도는 침묵을 쓰기 전 큰 수술을 받고 3년간 병상에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쓴 책이 ‘만조의 시각’이며 그 이후 병을 극복하고 침묵을 썼습니다. 만조의 시각엔 ‘병실의 냄새’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병이 나은 뒤엔 ‘양지의 냄새’를 써서 침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관리인의 일기가 국내 번역본에서 빠진 이유는 번역상의 문제로 추정된다. 17세기 일본어로 쓰인 문서를 해독하는 게 쉽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다. 김 교수는 2001년 도일(渡日) 이후 엔도 작품을 폭넓게 접했고 현지 연구자들과 만나 연구하며 엔도 새롭게 보기에 천착해 왔다.

엔도는 다작의 소설가였다. 단행본만 100권이 넘는다. 신앙과 인생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부터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담은 이야기, 똥과 오줌에 대한 ‘분뇨담’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김 교수는 “침묵은 그리스도와 우리가 만날 때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게 되고, 이 흔적이 아픔으로 경험될 때 하나님을 보는 창을 보여준다. 이 흔적과 아픔은 엔도 작품 전체에 흐르는 글쓰기 방식”이라고 했다.

“엔도의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보십시오. 그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자기 안에서 내면화돼야 합니다. 엔도는 고민하는 신앙, 생각하는 신앙을 추구했습니다. 생각 없이 무조건 믿는 차원을 넘어 성숙한 신앙을 향했던 것입니다.” 김 교수가 신자들에게 전하는 당부였다.

도쿄=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