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가 러시아의 부패 정치인과 슈퍼리치(갑부) 등을 상대로 ‘시민권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키프로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다. 뒤가 구린 러시아 부자들에게 EU 시민권을 팔고 있는 것이다.
가디언이 문제 삼은 것은 키프로스의 ‘골든비자’ 제도다. 자국 부동산이나 채권에 일정액 이상을 투자하면 체류 허가나 시민권을 주는 골든비자 제도는 키프로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스페인 포르투갈 몰타 그리스 불가리아 헝가리 등이 시행 중이다.
키프로스는 2013년 이후 골든비자 발급으로 40억 유로(5조4000억원)가 넘는 수입을 올렸다. 지난해에만 400여명에게 골든비자가 발급됐다. 가디언이 입수한 시민권 구입자 명단에는 러시아 전직 국회의원과 유력 기업인, 우크라이나 최대 민간은행 설립자, 억만장자 도박업자 등이 포함됐다.
키프로스는 자국 부동산에 200만 유로(27억원), 국채나 회사채에 250만 유로(34억원) 이상을 투자하면 시민권을 준다. 정부 입장에선 ‘고수익 사업’이다. 하지만 신청자들의 자금 출처와 불법성 여부 등을 제대로 검증하고 시민권을 주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반(反)부패 활동을 벌이는 비정부기구(NGO) ‘글로벌 위트니스’도 “골든비자를 운용하는 모든 나라는 오로지 투자유치 목적으로 (비자발행을 위한) 규제철폐 경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며 비자 신청자에 보다 엄격한 검증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철저한 점검이 없다면 부패한 사업가·정치인과 범죄자에게 손쉬운 ‘탈출 카드’를 건네주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포르투갈 출신 유럽의회 의원 아나 고메즈는 비윤리적이고 왜곡된 골든비자 제도가 시민권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포르투갈에서 골든비자를 구입한 사람들 명단을 얻으려고 수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며 “왜 명단이 비밀인가? 비밀로 하니까 더욱더 수상해 보인다”고 말했다.
글=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러시아 부자 대환영” 키프로스 ‘EU시민권 장사’
입력 2017-09-1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