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이호철 문학상 탄 ‘무국적’ 재일 조선인 작가 김석범

입력 2017-09-18 21:35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을 수상한 재일 작가 김석범이 18일 서울 은평구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작가 김석범(92)은 분단 조국을 거부하는 의미로 무국적을 택했다.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재일 작가 김석범은 18일 서울 은평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동강 난 조국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무국적으로 남았다”며 “나는 한반도 한 조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한 겨레의 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제주도 출신 부모를 둔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제주도에서 독립운동가와 교류했다. 1945년 오사카에서 광복을 맞은 뒤 이듬해부터 일본에서 지내왔다. 그가 57년 발표한 ‘까마귀의 죽음’은 제주 4·3사건을 다룬 최초의 소설이다. 97년 탈고한 ‘화산도(火山島)’는 4·3사건 전후 해방정국의 혼란을 그린 원고지 2만2000장 분량의 역작이다.

어떻게 이 사건에 천착하게 됐을까. 그는 “어떤 사람은 일본에 있는 내게 왜 (4·3사건을) 썼느냐고 묻는다. 거기(제주도)에 있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다”고 고백했다. 직접적 계기도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사건 현장에서 피신해 일본으로 밀항한 두 여인의 길을 인도하게 됐다. “친척 되는 여인이 옆에 있는 아무개는 ‘젖통이 없다’고 해요. 고문당하다가 잃은 거였지요.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받은 그 타격이 글을 쓸 힘을 줬습니다.”

여인들도, 그도 다시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대신 일본에서 고향의 아픔을 소설로 써내려갔다. “저는 고향에 가지 못한 채 상상력으로 화산도를 썼어요. 작가로서 자유와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었습니다. 일본의 어느 작가가 조선은 이미 해방됐기 때문에 해방공간을 다룬 제 소설에 보편성이 없다고 했는데 그건 조선 문학에 대한 편견이자 일본 문학에 대한 우월주의입니다.”

한국 정부는 한·일수교 후 한국 국적 취득을 조건으로 수차례 초청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나도 고향산천 냄새 맡고 고향 땅 밟고 싶었지요. 하지만 ‘사상으로서 조선적’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화산도는 한라산에 오르고 싶어도 오르지 못한 원한을 품고 쓴 이야기입니다.” 감정이 다소 격해졌는지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88년에야 그는 무국적을 유지한 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언젠가 평화통일의 때가 올 겁니다.” 70년 넘게 무국적자인 노(老)작가는 통일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은 서울 은평구가 통일을 기원하며 제정한 상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