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좌담] “WEA는 세계 신앙운동 한 축… 교류 금지 안돼”

입력 2017-09-19 00:00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 내에 세계복음주의연맹(WEA)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신학자들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 다사랑홀에서 긴급좌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박명수(서울신대) 교수, 김명혁(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목사, 이은선(안양대) 박용규(총신대) 교수. 강민석 선임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 안팎에서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의 교류 금지·단절 논란이 일고 있다(국민일보 9월 18일자 28면 참조). 지난 정기총회에서 ‘WEA 가입 및 교류금지’ 헌의안이 상정된 뒤 WEA대책위까지 꾸려진 상태이며, 18일 개막된 예장합동 제102회 총회에서 관련 보고서를 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계 일각에선 국내 대표 보수교단과 WEA간 관계 단절이 한국교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혁 목사,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박명수(서울신대) 교수, 한국개혁신학회 부회장 이은선(안양대)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 다사랑홀에서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사회는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회장 박용규(총신대) 교수가 맡았다.

<참석자>
좌담=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이은선 교수(안양대, 한국개혁신학회 부회장)
사회=박용규 교수(총신대,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회장)


-WEA에 대한 언급에 앞서 세계복음주의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명수 교수= 영미권에서 복음주의는 18세기 영국의 존 웨슬리,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가 일으킨 제1차 영적대각성운동이 추구했던 신앙을 말한다. 복음주의 신앙은 이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에 반대했다. 19세기 말부터 독일의 고등 비평이 미국에도 등장했고 이는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복음주의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복음주의자들은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유주의에 대항했다. 그들은 기독교의 근본 진리로 성경의 절대권위와 동정녀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스도의 대속과 육체적 부활, 최후의 심판을 꼽았다. 이로 인해 근본주의자로 불렸다.

이들은 1920년대 ‘원숭이 재판’이라 불리는 존 스콥스의 재판 이후 진보주의 진영과 벌인 싸움에서 패하고 힘을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등장했고 WCC 신학에 반대한 근본주의자들은 강력하고 공격적인 반대활동을 펼친 국제교회연합회(ICCC)를, 보다 온건한 입장을 지닌 이들은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를 각각 조직했다.

ICCC는 지나친 독단성을 보여 시간이 지나며 세력이 약화됐다. 하지만 NAE는 1951년 20개국의 복음주의자협회들이 모여 만든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로 확대됐다. 복음주의는 1970년대 로잔운동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대중전도운동 등에 힘입어 저변을 확대했고 세계 신앙운동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WEF는 2001년 세계복음주의연맹(WEA)으로 이름을 바꿨다.

-복음주의는 한국교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

△박 교수=한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선교단체인 미국 북장로교는 1895년 선교 정책에서 자신들은 ‘복음주의를 믿는다’고 밝혔다. 1905년 당시 장로교선교부와 감리교 등이 연합해서 ‘한국복음주의선교회연합공의회’를 만들었다. 하나의 단일 복음주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공의회는 해방 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됐다. 1960년대를 전후로 NCCK가 WCC와 연대하면서 진보 성향으로 흐르자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은 NAE와 관계를 맺게 됐다.

얼마 후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운동이 국내에 등장했다. 한 목사는 미국의 그레이엄 목사 등과 손잡고 민족 복음화를 외치며 한국교회를 이끌어 갔다. 1970년대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엑스플로74 선교대회 등을 거치며 한국교회는 성장했다. 이들은 진보주의에도 반대했지만 근본주의에도 반대했다. 복음전도를 위해 한국교회가 하나 될 것을 강조했다.

-WEA의 신학적 입장이 궁금하다. 일각의 주장처럼 WCC와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보는가.

△이은선 교수=WEA의 공식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정체성을 알 수 있다. WEA는 하나님이 처음 주신 성경은 정확무오하며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분의 동정녀 마리아로부터의 탄생, 대속의 죽음과 육체적 부활, 승천 등을 믿는다.

WEA는 인간의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죄인이 구원 받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남을 믿는다. 그리스도의 몸인 참된 성도들이 연합함도 믿는다. 이 같은 신앙고백을 볼 때 WEA가 종교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WCC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박 교수=WEA는 무종교 불신자들에 대해 개종 전도 금지를 선언한 것이 없다. WEA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강조한다.

-예장합동이 혹여 WEA와 교류 금지나 단절을 결정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이 교수=WEA에는 미국장로교회(PCA) 등 해외 핵심 보수교단들이 대거 속해 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칼빈신학교, 트리니티신학교, 리폼드신학교 등도 포함돼 있다. 뿐만아니라 아시아복음주의협의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 한국복음주의신학회 등이 직·간접적으로 WEA와 교류하고 있다. 총신대 교수들은 물론 국내 보수 신학교의 많은 교수들이 WEA 산하 복음주의신학회(ETS)를 통해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학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만약 예장합동이 WEA와 교류를 단절한다면 이는 ‘나홀로 섬’을 자초하는 처사다. 성경의 권위를 신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신앙을 믿는 정통교회, 종교다원주의 등 세상의 도발에 맞서고 있는 세계교회와 관계를 끊는 것과 다름 없다.

교회 지도자들이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전에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며 구성원들 전체의 의견을 듣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단과 한국교회의 발전, 세계교회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박용규 교수=사회자이지만 예장합동에 소속된 학자로서 한 말씀 드리겠다. 교단이 지난 30∼40년 간 해외선교, 교회 인재 양성 등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2005년 제90회 총회에서는 예장개혁과 통합을 이뤄내며 한국 장로교 최대 교단이 됐다. 하지만 WEA 문제로 교단 내 의견이 나뉘고 분열될 위기에 놓였다. 종교개혁500주년의 근본 정신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 교수=종교개혁의 정신에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는 5가지 솔라(sola)를 빼놓을 수 없다. 종교 개혁가들은 그 중 특히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루터는 성경을 연구해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개혁정신은 루터와 츠빙글리의 견해차로 갈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때 그들 사이에 나타난 인물이 칼뱅이다. 칼뱅이 루터와 츠빙글리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고, 1549년도에는 성찬론의 일치를 이뤄냈다. 영국 성공회가 세워질 때도 성공회가 다섯 가지 솔라를 받아들인다면 지지하겠다고 했다. 다른 분야의 차이점은 연합해서 하나의 교회를 이뤄갈 수 있다고 했고 그런 연합정신아래 부패한 로마 가톨릭을 이겨낼 수 있었다.

-WEA 논란에 대한 바람직한 해법은.

△김명혁 목사=종교 개혁자들이 가장 원했던 건 ‘이신칭의’ 이후 거룩한 삶을 지속적으로 사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한복협도 WEA에 가입해 활동해왔다. 이번 논란이 한국교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란다. 우리는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