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사법부 수장 공백 초유사태 없게 해달라” 호소
문재인 대통령이 “현 대법원장 임기는 오는 24일 끝난다. 그 전에 새로운 대법원장 선임 절차가 끝나지 않으면 사법부 수장 공백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며 지연되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차 출국을 하루 앞둔 17일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사법부 새 수장 선임은 각 정당 간 이해관계로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요체인 입법·사법·행정 3권분립 관점에서 봐 달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대독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인준 권한을 가진 국회가 사정을 두루 살펴 사법부 수장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 달라”며 “그동안 국회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했지만 부족했던 것 같아 (미국으로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사법부 수장을 상대로 하는 인준 절차에 예우와 품위가 지켜지는 게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에 이어 김 후보자에 대해서도 부결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 대한 우려의 표시로 해석된다.
5당 대표들과의 회동도 다시 한 번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 유엔총회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다”며 “그렇지만 국제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이익을 지키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번영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유엔총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각 당 대표를 모시겠다. 국가 안보와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하고 협력을 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제안은 김이수 전 후보자 낙마 이후 싸늘해졌던 야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다시 협치에 시동을 걸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들러리 회담’이라며 여러 차례 거부 의사를 밝힌 상황이어서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8일 출국에 앞서 현안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인 사법부 공백을 막는 게 중요하다”면서 “22일 귀국 전까지 문 대통령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국회에 마지막으로 호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적폐연대’ ‘땡깡’ 발언 등의 사과를 요구하는 데 대해선 “각 당 원내대표들이 국회에서 협의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노력이 부족했다” 발언에 대해선 “김이수 전 후보자도 그렇고 국회에서 진행돼야 할 절차들이 잘 안 되는 것에 대해 문 대통령 역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메시지 준비 과정에서 청와대 인사라인 문책 등에 대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민주당, 對野 확전 접고 ‘읍소’ 모드
사상 초유의 사법부 수장(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동시 공백 사태가 1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더불어민주당의 고심이 더욱 깊어졌다. 여당 자력 처리는 불가능하고, 보수 야당은 완강히 반대하고 있어 결국 기댈 곳은 국민의당뿐이라는 점이 현실이 됐다.
당 지도부는 주말 내내 야권을 향한 확전을 자제하며 ‘읍소’ 모드로 전환했다. 우원식 원내대표와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야당 지도부와 통화하며 설득에 매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17일 “의원들에게 해외일정 자제가 아닌 금지 지시가 다시 내려졌다. 일정을 취소하고 비상대기 상태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제윤경 원내대변인도 “국회 동의절차 지연으로 사법부 수장이 공석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야당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지만 야당을 겨냥한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했다. 민주당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탄핵과 정권교체에 대한 불복’ ‘적폐연대’ 등의 표현을 쓰며 국민의당을 맹비난했지만 주말 동안 국민의당을 언급한 논평은 아예 없었다.
이 같은 민주당의 ‘로키(low-key) 행보’는 ‘여소야대 다당체제’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크지만 전략적인 성격도 녹아 있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당시 야권에서 “여당이 협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을 받았던 만큼 낮은 자세로 협조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며 여론을 통해 야권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 문제는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상임위 단계인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부터 막혀 있다. 여기에 국민의당이 ‘땡깡’ 발언 사과를 요구하며 본회의 일정 협의도 거부하고 있어 인준안 국회 통과까지 거쳐야 할 단계도 많다.
민주당은 야권의 김명수 후보자 반대 논리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판단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에 대한 직접적 비난전 대신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여론에 전달해 명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野 3당, 文 대통령 협조 요청에 싸늘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의 ‘캐스팅보터’인 국민의당은 김 후보자 인준 절차에 협조할 수 없다는 강경 기류를 유지하고 있다. 보수야당도 사법부 독립성 침해를 이유로 김 후보자 인준에 반대하고 있다.
야3당은 김 후보자 인준 협조를 요청한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에 싸늘한 반응을 내놨다. 국민의당은 “사법부 공백 사태를 가정해 국회를 압박하지 말라”면서 여당 지도부의 사과 입장 표명을 거듭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책임을 국민의당에 돌리며 ‘땡깡’ ‘적폐 연대’ 등 발언을 한 것을 공개 사과하라는 것이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17일 “김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국민의당 의원들이 환호하고 포옹했다는 민주당 측 거짓 선동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은 김명수 후보자 심사경과보고서 채택 과정에는 동참하되 그 이후의 표결 일정 협의 등에는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다만 호남 민심 이탈을 우려하는 당내 의견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에도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당은 “대통령은 왜 입만 열면 되뇌던 여론에 맞서가며 김명수 후보자에게 목을 매느냐. 결국은 사법 권력을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당 고위 관계자는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사법부가 좌경화될 우려가 높다”면서 김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바른정당 역시 김 후보자의 ‘이념 편향성’을 문제 삼았다. 바른정당은 문 대통령의 협조 메시지에 대해 ‘몽니’라는 표현을 쓰며 맹비난했다.
김경택 이종선 기자 ptyx@kmib.co.kr
김명수 인준… 대통령 ‘호소’, 與 ‘읍소’, 野 3당 ‘싸늘’
입력 2017-09-1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