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자들 “국회 견제권이 대통령 임명권 압도하면 안돼”

입력 2017-09-18 05:00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가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헌법학자들은 “입법부의 일원인 보수야당이 사법부 수장 인준 문제를 정치적 이해관계나 정파적 논리와 결부시키는 건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를 방해하는 것이자 국회의 견제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권력분립의 틀을 깨는 심각한 행위”라는 비판도 나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반 각료 인준 여부 결정과 대법원장 또는 헌법재판소장 인준 문제는 다르게 봐야 한다”며 “사법기관 수장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사법독립이라는 대원칙 자체가 깨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낙마에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마저 불투명해지면서 법조계에서는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박한철 전 헌재소장 퇴임 이후 헌재는 230일 가까이 권한대행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 역시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24일까지 김 후보자 인준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대법원장이 재판장인 전원합의체 심리는 사실상 멈춰 서게 된다.

헌법 제104조 제1항은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해 국회에 동의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에 대해 다수의 헌법학자들은 “국회가 너무 나갔다”고 평가했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대통령의 임명권에 대한 국회의 견제 장치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이라며 “임명권을 대신할 정도에 이르면 남용에 해당한다”고 했다.

김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이 삼권분립 원칙에 따른 정당한 결정이었다는 야당 주장에 대해서도 “만약 부결이 국민의 뜻이었다면 진작 했어야 했다”며 “소장 공석 사태를 반년 넘게 초래하며 사실상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지적했다.

야권은 김 후보자의 이념적 편향성, 경력 등을 이유로 대법원장 자격이 없다는 논리를 펴지만 학자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문현 이화여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현 대법원이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권한이 대법원장에게 집중됐다는 게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는데, (김 후보자에게) 왜 대법관 출신이 아니냐고 추궁하는 건 제대로 된 비판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김종철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헌재소장이나 대법원장이 지위를 수행할 만한 전문성을 갖췄느냐, 도덕적 흠결이 있느냐의 차원이 아니고 정파 논리로 검증을 하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는 결국 '사법의 정치화'를 야기한다는 측면에서 청와대와 정치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청와대가 사법부 수장들에 대해 코드 인사를 한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고,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야당이 반대할 수 있는 사유는 된다"고 했다. 전종익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만약 사법부 수장 공석 사태가 현실화된다면 그건 국회와 정부 모두의 책임"이라고 꼬집었다.

임 교수는 "(국회 등이) 타 헌법기관을 존중할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며 "정치권의 힘겨루기에 최고 사법기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지닌 국민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가현 양민철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