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A씨의 남편은 퇴직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정년을 지나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걱정 투성이다. 남편이 경비원으로 근무한 이후 밤마다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남편의 업무 현장을 몰래 가봤다고 한다. 지하에 위치한 경비원 휴게실로 내려가자마자 곰팡이 냄새가 가득했다. 이런 환경이니 기관지에 좋을 리 만무했다. 충격을 받은 A씨는 지난 12일 개소한 ‘현장노동청’을 찾아 편지 형식으로 쓴 근무환경 개선 민원을 제출했다. 평소 같으면 지방고용노동청의 복잡한 접수 절차를 거쳐도 해결이 쉽지 않았을 A씨의 민원은 곧바로 고용노동부 실무진에게 전달됐다.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마련한 휴게시설 설치 지침을 바탕으로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근로 현장의 목소리가 고용부 실무진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17일 현재 서울 2곳을 비롯해 전국 10곳에 설치한 현장노동청이 창구 역할을 맡았다. 각 현장노동청에는 함이 설치돼 있다. 개인·단체 누구나 어떤 형식으로든 민원을 적어 함에 넣으면 밀봉 상태로 고용부에 전달된다. 밀봉 덕분에 익명성을 보장받다보니 A씨 사례처럼 다양한 민원이 접수되는 효과도 추가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노동청 설치는 고용행정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마련된 제도다. 기존에는 지방고용청에 임금체불 등 민원을 접수하면 내용 일부만 고용부로 전달됐다. 자세한 내용 대신 전체 임금체불 몇 건 식으로 수치화해 취합되는 식이다. 구체적인 사연이나 민원 내용은 고용부에서 알 수 없는 구조였다. 이를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영주 고용부 장관까지 나서면서 문제 해결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김 장관은 4곳의 현장노동청을 방문해 가는 곳마다 5∼6개의 민원을 직접 접수했다. 대구 현장노동청을 방문했을 때는 아사히글라스 및 태경산업 노조 대표들과 연달아 대면했다. 태경산업의 경우 생산현장 내 CCTV 철거와 노조 탄압 중단 등을 요청했다. 김 장관은 관할인 대구지방고용노동청에 별도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18일에는 추가로 설치한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문화광장 현장노동청을 찾는다. 김 장관은 “국민 누구나 애로사항이 있다면 형식에 관계없이 현장노동청에 제출해 달라”고 독려했다. 다만 현장노동청이 추석 전인 오는 28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추가로 운영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현장에 간 노동청… 勞의 소리에 귀 활짝
입력 2017-09-1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