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앞두고… 임용 8개월 만에… 안타까운 희생

입력 2017-09-17 18:42 수정 2017-09-17 22:46
17일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소재 정자 ‘석란정’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던 중 동료 2명이 숨지자 함께 출동했던 강릉소방서 소방관들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1956년 건립된 석란정은 화재 후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 붕괴됐다.뉴시스

강원도 강릉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2명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숨졌다. 1차 진화 후 재발화된 정자의 잔불정리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17일 강원도소방본부에 따르면 강릉소방서 경포119안전센터 소속 이영욱(59) 소방위와 이호현(27) 소방사가 이날 오전 4시51분쯤 강릉시 강문동 석란정에서 진화작업 도중 정자가 무너져 매몰됐다. 이들 소방관은 정자 바닥에서 연기가 나자 안으로 들어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두 사람은 10여분만에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모두 숨졌다.

사고가 난 석란정은 1956년 건축된 목조 기와 정자로 철거를 앞둔 비지정 문화재로 알려졌다. 전날 오후 9시45분쯤 최초 화재가 발생해 10분 만에 불을 껐지만 다음날 오전 3시51분쯤 재발화했다.

순직 소방관들은 정년을 앞둔 베테랑 소방관과 임용된 지 8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신참 소방관이었다. 1988년 2월 소방공무원에 임용된 이 소방위는 지난 7월부터 경포119안전센터 화재진압 팀장을 맡았고 내년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었다. 지난 1월 임용된 이 소방사는 경포119안전센터가 첫 근무지였다. 지난해 2월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과를 졸업한 그는 꿈꾸던 소방관이 됐다며 기뻐했던, 밝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동료 소방대원과 유족들은 침통해 했다. 최상규(59) 경포119안전센터장은 “강인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던 이 소방위와 팀 막내로 센터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던 이 소방사가 순직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소방위의 아들(36)은 “아버지는 6남 2녀 중 일곱째지만 91세의 노모를 모실 정도로 효심이 깊으셨다”며 “내년에 가족여행을 많이 다니자고 계획했는데 허망하게 가셔서 마음이 아프다”고 울먹였다. 이 소방사의 아버지(55)는 “아들은 남을 구해야 하는 소방관에게 체력은 필수라며 하루도 운동을 빼먹지 않은 ‘천상 소방관’”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도소방본부 관계자는 “오래된 건축물이 보존 가치가 높을 것으로 판단돼 적극적으로 화재 진압을 하다 변을 당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도소방본부는 강릉의료원에 합동분향소를 마련했다. 합동영결식은 오는 19일 오후 2시 강릉시청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엄수된다.

한옥 건축물 진화시엔 일반 건축물보다 강화된 소방관 안전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원대 소방방재공학과 정영진 교수는 “한옥 건축물은 진화 후에도 건축물 주재료인 나무에 불씨가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재발화하는 등 현대식 건축물 보다 위험성이 더 크다”며 “출동 소방관들이 냉정하게 현장을 판단하고 안전수칙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릉=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