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과거사 바로잡기’… 첫 직권 재심 청구

입력 2017-09-17 18:38
‘태영호 납북 사건’ ‘아람회 사건’ 등 군사독재정권 시절 강압수사와 조작으로 얼룩진 시국사건들에 대해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키로 결정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조사를 거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과거사가 대상이다. 이들 사건의 일부 피고인은 재심을 청구하지 않아 부당한 유죄 판결을 바로잡지 못했다. 과거사 피해자나 유족이 아닌 검사가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검찰청 공안부(부장 권익환 검사장)는 태영호 납북사건과 관련해 1975년 유죄 판결을 받은 고 박모씨 등 과거사 사건들의 피고인 18명에 대해 재심을 청구키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직권 재심청구 사건이 된 대상은 태영호 납북사건과 아람회 사건을 비롯해 ‘납북귀환 어부 사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한국교원노조총연합회 사건’ ‘조총련 연계 간첩사건’ 6건이다. 모두 수사기관의 가혹행위와 불법 구금이 자행됐고 시간이 흘러 조작으로 판명된 사건들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달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으로 사과한 뒤 대검 공안부는 ‘직권재심 청구 태스크포스(TF)’를 설치, 과거사위의 재심권고 사건 73건을 전수조사했다. 사건 기록과 판결문, 과거사위의 진상조사 결과 등을 검토한 결과 공동 피고인의 재심 무죄 판결이 있음에도 일부 피고인들로부터 재심이 청구되지 않은 사건이 총 12건(피고인 29명)인 것으로 분석됐다. 검찰은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 본인이나 유족의 연락처를 확보해 일일이 재심 청구 취지를 설명했다. 대검은 ‘문인 간첩단 사건’ 등 나머지 6건(11명)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은 최근 과거사 사건에 대한 ‘재심대응 매뉴얼’의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재심으로 누명을 벗은 과거사 피해자·유족을 위해서다. 자체적으로 마련한 ‘재심 무죄 및 국가상대 손해배상 사건의 상고권 적정행사 방안’은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재심의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유죄 인정 증거가 새로 발견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고를 포기하는 내용이다.

재심에 뒤따르는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시에도 검찰은 무의미한 상소를 자제키로 했다. 하급심에서 국가와 공무원의 책임이 인정되고 번복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판단되면 재판을 질질 끌지 않겠다는 것이다. 법리적 다툼 여부가 첨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검찰시민위원 등 외부인사가 참여한 위원회를 거치게끔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