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미래포럼] 빅데이터의 힘… ‘딸의 임신’ 아빠보다 먼저 알고 쿠폰
입력 2017-09-18 05:00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대형마트 ‘타깃(Target)’ 매장에 한 남성이 들이닥쳤다. 그는 직원을 붙잡고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타깃이 자신의 고등학생 딸에게 아기 옷과 수유제품 등을 포함한 유아용품 할인쿠폰을 보냈다는 것이다. 남성은 “고등학생인 딸에게 임신을 부추기는 거냐”며 언성을 높였다. 담당 매니저는 임산부에게 보낼 쿠폰을 잘못 보냈다고 생각했고, 정중히 사과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며칠 뒤 재차 사과하기 위해 전화를 건 매니저는 남성의 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아버지도 몰랐던 딸의 임신 사실을 대형마트는 어떻게 알았을까. ‘빅데이터’의 힘이었다. 타깃은 SNS와 인터넷 등을 검색해 분석한 고객추적 시스템을 이용해 10대 소녀가 ‘임신을 했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2012년 2월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이 사례는 더 이상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정보통신·유통 등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도 적극적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빅데이터는 일반적인 데이터베이스보다 훨씬 큰 정보를 말한다. SNS 같은 사회관계망 자료나 상업적 거래를 포함한 거래내역 자료, 고정센서 데이터 등 사물인터넷 자료 등이 대표적인 빅데이터다. 국내 빅데이터 시장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 1643억원에서 2014년 2013억원, 2015년 2623억원까지 성장했다.
눈에 띄는 건 금융권에서의 활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1일 통계기획팀에 ‘빅데이터통계연구반’을 새로 설치했다. 지난해 12월엔 신한카드와 경기예측 연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기도 했다. 신한카드는 한은의 가계소비지출, 서비스업 생산 등 국민소득 구성 항목 가운데 카드 빅데이터로 추정할 수 있는 항목을 발굴해 국내총생산(GDP) 추계 고도화를 도울 예정이다.
빅데이터는 소비자의 삶에도 영향을 끼친다. 특히 카드사를 중심으로 빅데이터를 마케팅이나 서비스에 접목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삼성카드는 중소 가맹점의 효율적인 마케팅을 지원하기 위해 빅데이터 분석 기술 기반의 마케팅 지원 서비스 ‘링크 비즈파트너(LINK bizpartner)’를 출시했다. 중소 가맹점주가 가맹점 전용 홈페이지에 고객에게 제공할 혜택을 등록하면 삼성카드가 스마트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이용 가능성이 높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삼성카드는 4만여 가맹점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고 향후 성과 검증과 가맹점주 반응을 확인해 적용 가맹점을 확대할 계획이다.
신한카드는 2013년 업계 최초로 빅데이터센터를 설치한 뒤 다양한 상품을 선보여 왔다. 월 평균 승인건수 2억건, 고객 2200만명, 가맹점 270만개의 플랫폼에서 나오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별도 할인쿠폰 없이 자동으로 할인해주는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 ‘샐리’와 유사한 소비 패턴을 공유한 집단을 나눈 상품개발 체계 ‘코드나인(Code9)’이 대표적이다.
KB국민카드도 올해 초 ‘빅데이터전략센터’를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편제한 뒤 빅데이터 활용 컨설팅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또 지난 4월 미국 최대 한인 가맹점 대상 신용카드 매입사인 UMS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해외시장 진출까지 노리고 있다.
삼성카드 빅데이터연구소 이승목 팀장은 “앞으로 금융권 빅데이터 활용은 결제 정보를 통해 소비 맥락을 파악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누가, 왜 쓰는지를 파악해 결제 시점 전에 동기를 유발하는데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출시장에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정교한 신용도 평가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빅데이터는 인공지능(AI)과 로보어드바이저(RA)의 활용도 이끌어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포트폴리오를 자문해주거나 직접 운용하는 자산관리 서비스다. 지난해 9월 금융 당국 주도의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시험 시스템)가 운영됐고 주요 시중은행 대부분이 참여했다. 지난 5월부터는 테스트베드 심사를 통과한 로보어드바이저들이 서비스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이달 초부터 자영업자를 포함한 기업대출 심사에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존에 기업대출 신청을 받으면 지점장이 직접 심사해 승인 여부를 결정했던 것을 AI가 대신한다. 지난 7월 출시한 로보어드바이저 하이로보는 출시 2개월 만에 가입자 2만명, 가입금액 2000억원을 넘겼다.
우리은행은 음성명령 인식이 가능한 챗봇서비스 ‘위비봇’을 출시했다. 기존의 질문과 답변을 고르는 선택형 방식이 아니라 상담원처럼 대화가 가능하다. 신한금융그룹도 인공지능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M-폴리오’를 운영하고 있다.
글=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 이종석 신한카드 빅데이터센터장
“5년 내 전 세계적으로 AI가 인간 업무 도울 것”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AI) 기술은 어디까지 왔을까. 국내 업체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이고,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이종석 신한카드 빅데이터센터장은 이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인사 중 한 명이다. 2014년 취임 이래 AI 기술을 금융 현장에 접목시킬 방안을 꾸준히 연구해 왔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의 연구로 신한카드는 조만간 AI 기술 기반의 새 카드상품체계 발표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신한카드 본사에서 이 센터장을 만났다.
이 센터장은 “빅데이터의 등장은 AI 개발에 획기적인 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I와 인류의 모습을 역사 속 인물 ‘헬렌 켈러’와 ‘애니 설리번 선생님’의 관계에 비유했다.
이 센터장은 “헬렌 켈러에게 비상한 재능이 있었지만 위대한 학자가 되기까지는 보고 듣는 법을 알려주는 설리번 선생님이 필요했다”면서 “각 기업에서 개발 중인 인공지능도 같은 단계를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AI에 충분한 데이터를 입력시키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데 빅데이터 기술이 이를 획기적으로 간소화할 단초를 제공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센터장은 현재는 알고리즘(문제 해결을 위해 입력된 자료를 토대로 원하는 출력을 유도해내는 규칙의 집합)을 갖추고 있는 AI로 하여금 대량의 데이터를 습득시키는 단계라고 말한다. 또 최소 5년 내에는 전 세계적으로 AI가 인간의 업무를 돕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그 중심에 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내에서는 빅데이터에 앞서 이를 활용할 알고리즘조차 충분히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구글 등 AI 알고리즘을 갖춘 외국 기업들이 국내에 못 들어오고 있는 건 AI의 한국어 인지 시스템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2년 내에는 그 부분도 극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국 기업들이 보다 발달된 AI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갖춘 채 국내 기업과 정면 승부하기 시작하면 그 격차를 만회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 센터장은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을 다들 무서워하는 건 누군가 성공신화를 써내면 나머지는 경쟁력을 다 잃게 되기 때문”이라면서 “어떤 기업이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꿔내느냐에 따라 기업 간의 격차가 순식간에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센터장은 “경영진의 목표의식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단순히 만들어진 기술에 자기 사업을 접목시키는 게 아니라 목적을 갖고 기술을 활용하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