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세계헌법재판회의 총회에 참석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12일 ‘법치주의의 다양한 개념’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전날인 11일 국회에서 임명동의안 표결이 이뤄졌기 때문에 그는 이때 ‘프레지던트(헌재소장)’로 소개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액팅 프레지던트(헌재소장 권한대행)’로서 기조연설을 마쳤다.
해외에서 임명동의안 부결 소식을 접해야 했던 김 대행은 최근 주변에 “이제는 좀 홀가분해졌다”는 심경을 전했다고 한다. 그가 헌재소장 후보자 신분을 벗은 것은 116일 만이다. 16일 귀국하는 김 대행이 출근하는 다음주 중 헌재에서는 재판관회의가 열릴 전망이다. 이 자리에서는 권한대행을 다른 헌법재판관에게 넘길 것인지의 여부도 논의·검토될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행은 이정미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퇴임한 3월 13일 이후 6개월간 권한대행직을 수행해 왔다. 헌재소장의 역할과 함께 일반 재판관의 업무도 병행해야 하는 권한대행은 업무가 과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헌재소장이나 소장 후보자와 달리 현역 재판관으로서 헌법재판 사건을 배당받고 때에 따라서는 주심으로서 결정문 작성에도 깊이 관여해야 한다. 헌재가 권한대행의 이양 여부까지 검토하는 원인에는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교체가 결정되면, 차선임 중 연장자인 이진성 재판관이 후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소장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재판관 중 임명일자 순으로 그 권한을 대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내년 중 동시 임기만료가 예정된 재판관들이 기간을 나눠 권한대행직을 맡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다만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김 대행이 재판관직에서도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은 사정을 모르는 억측에 가깝다는 게 헌재 내부의 시각이다. ‘9인 체제’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또다시 물러나는 재판관이 생긴다면 헌법재판이라는 고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재판관 숫자가 8인에 머무는 기간이 계속되며 그간 재판관 업무는 조금씩 가중됐다.
헌재에는 여전히 ‘현자의 판단’을 기다리는 굵직한 사건들이 다수 있다. 김 대행에 대한 야당의 공세와도 연관됐던 군대 내 동성애 처벌조항의 위헌제청심판은 전원재판부가 심리 중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의 위헌 여부도 시민사회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법조계가 그간 국회를 상대로 조속한 헌재소장 임명 표결을 촉구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경원 기자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짐’ 벗나… 헌재, 내주 이양 여부 검토
입력 2017-09-15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