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증거인멸을 시킨 혐의로 청구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간부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서 검·법 갈등이 재연됐다. 6일 전 영장 기각 사유를 두고 한차례 충돌했던 양쪽은 이번엔 적용 법조항의 타당성을 놓고 공개 설전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박모 KAI 고정익개발사업관리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13일 밤 기각했다. 강 부장판사는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해야 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증거인멸 지시를 받은 사람이 자기 사건의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강 부장판사는 검찰이 법원의 잇단 영장 기각에 대해 지난 8일 ‘사법 불신’을 언급하며 날을 세운 걸 의식한 듯 평소보다 긴 설명을 곁들여 “법리적으로 증거인멸교사 자체가 성립될지 의문이 있다”는 걸 강조했다.
서울중앙지검은 14일 새벽 기자들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를 정면 반박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전날 기자단 오찬에서 “(영장 기각 유감 표명에) 숨은 뜻은 없다”며 확전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다시 법원과 충돌한 것이다.
검찰은 증거인멸이 아닌 증거인멸 교사죄는 인멸 대상인 증거가 자기가 처벌받을 형사사건에 관련된 경우에도 성립된다는 논거를 댔다. 검찰 관계자는 “박 실장은 회계부서와 관련 없는 개발부서 직원에게 분식회계 혐의와 직결되는 중요 증거서류를 직접 골라 없애도록 교사한 것”이라며 “기각 사유를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요 피의자 신병 확보가 또다시 불발되면서 KAI 수사는 자칫 수사동력마저 잃을 위기에 놓였다. 지난 7월 수사 착수 후 사기 대출 혐의로 구속된 협력업체 대표를 제외하고, KAI 본사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구속영장 4건 중 3건이 법원에서 퇴짜를 맞은 상태다.
영장이 기각된 이들은 KAI 비리의 정점인 하성용 전 사장 혐의와 연결되는 고리이기도 하다. 하 전 사장 소환조사도 기약 없이 늦어지고 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KAI 간부 영장 또 기각… 法-檢 ‘공개 설전’
입력 2017-09-14 18:15 수정 2017-09-14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