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카카오에 ‘예약전송’ 요청… 퇴근후 ‘카톡지시’ 사라지나

입력 2017-09-15 05:02

시도 때도 없다. 휴가라고 피할 수 없다. 몰래 나가기에는 눈치가 보인다. 직장에서 업무용으로 활용하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단톡방)’의 특징이다. 편리성을 위해 만든 기능이 ‘저녁 없는 삶’을 양산하는 도구가 됐다. 일·가정 양립을 내세운 문재인정부가 단톡방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정부가 카카오 측에 ‘퇴근 후 카카오톡 금지’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저녁 늦게 보내는 업무지시 메시지가 아침에 전달되는 ‘예약 전송’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했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부 실무진은 지난달 초에 카카오 본사를 직접 방문했다. 관행이 된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방법 등을 논의했다. 예약 전송 기능 마련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으로 캠페인을 벌이자는 제안도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밖에 단톡방에 동의 없이 초대되는 것도 바꿔야 하지 않나 등 여러 가지 제안을 전달했다”며 “연구용역을 통해 효과적인 방법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능과 기술에 초점을 맞춘 정부와 달리 정치권에서는 규제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지난 3월 23일 퇴근 후 카카오톡으로 업무지시를 하면 근무로 인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카카오톡 뿐만 아니라 전화 등 모든 통신수단을 포함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도 지난달 4일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내놨다.

민간에서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인식’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카카오 측은 고용부 제안에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기능 개선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며 “이미 채팅방별 알림 관리, 단체 채팅방 탈퇴 및 재초대 거부 등의 기능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사회적 논의만으로 문제를 풀기는 쉽지 않다. 주무부처인 고용부 직원조차 ‘단톡방 스트레스’를 호소할 정도다. 고용부 관계자는 “A국장의 경우 모든 직원을 초대해 단톡방을 만든 뒤 저녁이건 새벽이건 시도 때도 없이 업무지시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