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기업의 사회책임 활동과 관련한 공시 확대를 강조하면서 금융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른바 ‘착한 기업’ 투자 붐이 조성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면 기업의 공시 부담이 가중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 원장은 지난 11일 취임사에서 “기업의 저출산 대응 노력 등을 공시하게 해 투자자 판단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12일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정부가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국민연금 등 기금을 운용할 때 ‘ESG(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 요소’를 고려한 사회책임투자 원칙을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착한 투자’ ‘윤리적 투자’로도 불리는 사회책임투자는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4일 “전 세계에서 윤리적 투자 붐이 일고 있다”며 “세상과 사람들에게 좋은 투자처가 결국 이익이 된다는 걸 투자자들이 알게 됐다”고 전했다. 2008년 미국 내 ‘ESG 펀드’ 운용자산은 890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올해 상반기에 2000억 달러(약 225조원) 규모를 넘어섰다.
국내에서 사회공헌활동(CSR)은 널리 알려졌지만, 사회책임투자는 익숙하지 않다. 기업 봉사활동 등의 정보는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지만, 환경 보호나 노사 관계, 지배구조 개선 등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정보를 체계적으로 공시하기 위한 제도도 마련돼 있지 않다. 상장기업이 사업보고서에 사회책임 활동을 공시하게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최 원장의 발언을 통해 국회의 법 개정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법안에 맞춰 실무적인 공시를 어떤 식으로, 어느 정도 강도로 해야 할지 논의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도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회책임투자 상장지수펀드(ETF)가 1년 만에 재등장했다. 한화자산운용은 지난달 31일 ‘ARIRANG ESG 우수기업’ ETF를 상장했다. 사회책임투자 ETF는 지난해 9월 멀티에셋자산운용의 ETF가 상장 폐지되며 자취를 감췄었다. 국내 주요 사회책임투자 펀드는 선전하고 있다. 최근 1년 수익률이 10%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속도를 붙이는 것도 ‘착한 투자’의 확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기관투자가들이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뛰어들면 기업의 배당이 높아지는 등 주주 이익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코스피 상장사들의 중간·분기 배당 규모는 3조원을 넘겨 지난해에 비해 3.5배 증가했다.
다만 기업들은 사회책임 활동 공시 확대를 부담스러워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대한 기업 활동에 무리가 없는 수준으로 제도를 마련할 것”이라면서도 “기업이 사회책임 활동을 널리 알리면 오히려 투자가 확대되는 등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단순히 공시 부담으로 평가할 건 아니다”고 말했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기업 사회책임 공시 늘리겠다는데… ‘착한 투자’ 띄울까
입력 2017-09-13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