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오뚜기 본사. 고(故)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의 1주기 추모식이 열리는 곳이었지만 건물 안에는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검은 옷차림의 참석자들만이 이곳이 함 명예회장의 추모식 장소임을 알렸다.
행사는 300여명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공간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언론이나 외부 인사는 초청하지 않고 직원 200여명과 가족, 사회공헌 사업 관계자만 참석해 조용히 치러졌다.
최근 오뚜기가 ‘갓뚜기(God+오뚜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진 데에는 함 명예회장의 숨은 선행이 있었다. 함 명예회장과 생전 기부 활동 등으로 인연을 맺은 밀알복지재단 홍정길 목사는 추도사에서 “함 명예회장은 예수님 말씀 그대로 사신 분”이라며 “좋은 일을 해놓고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오뚜기 정신’이라고 늘 말씀하시며 알리는 것을 반대하셨다”고 회고했다.
오뚜기는 함 명예회장의 뜻을 받들어 1992년부터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 사업을 통해 20여년 간 4472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함 명예회장은 밀알복지재단에 315억원 상당의 개인 주식을, 별세 사흘 전에는 오뚜기재단에 100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뚜기의 상생 협력과 일자리 창출 노력 등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지난 7월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로는 유일하게 함영준 회장이 청와대 기업인 간담회에 초청받았다.
함 명예회장은 납품 대금 정산과 같은 기본에서부터 원칙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홍 목사는 “오뚜기는 공휴일에 물건이 입고되면 반드시 그 전날 대금이 지급되는 회사”라며 “어떤 일이든 이해관계가 발생하면 이익이 있는 편과 손해를 보는 편으로 갈라지게 마련인데 함 명예회장은 ‘손해 보는 쪽을 택하는 것이 오뚜기 정신’임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추모 영상에서는 ‘식품보국(食品報國)’의 뜻을 위해 살았던 함 명예회장의 생전 모습도 공개됐다. 영상에서 함 명예회장은 “하나님이 나를 무엇을 위해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찾다 보니 식품산업이 됐다”며 “인류 식생활 향상에 기여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오뚜기의 꿈이고 목표이고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아들 함영준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함 회장은 “아버지 지갑을 정리하면서 퇴원하면 해야 할 일들을 적어둔 메모를 발견했다”며 “‘원가 절감’ ‘추석 이후 라면 대책’이라는 메모에서 당신이 얼마나 회사를 생각하는 분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최근 회사가 사회적으로 유명해졌는데 아마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업이 되자’고 늘 말씀하셨던 것이 나타나는 것 같다”며 “앞으로 사회적 책임도 무한으로 느끼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추모식 이후 함 명예회장 동상 제막식, 천안공원 묘역 참배, 추모 음악회 순으로 진행됐다.
글=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 1주기
입력 2017-09-12 19:54 수정 2017-09-12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