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옥상 “예술은 제 흥에 겨워 찧고 까부는 거 아닌가요?”

입력 2017-09-12 19:51 수정 2017-09-13 00:05

“예술은 그냥 놔두는 게 최고지요. 예술가가 제 흥에 겨워 찧고 까부는 거, 그게 예술 아닌가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형상화한 대형 가면에 ‘그 입 좀 다물라’는 듯 반창고가 붙여져 있다. 2015년 박 전 대통령이 지시한 이른바 ‘복면금지법’을 조롱해 시민들이 가면을 쓰고 축제하듯 시위에 참가했던 것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민중미술의 대표주자 임옥상(67·사진)이 돌아왔다. 지난 11일 개인전 ‘바람 일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국내외 정치 지도자 가면이 1층을 가득 채우고 있다. 풍자가 어떤 에둘림도 없이 직설적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얼굴엔 ‘보통 사람’이란 글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검은 선글라스엔 ‘유신’ 두 글자가 박혀 있다. 1980년대 민중미술 전시를 보는 것 같다고 하니 “정부가 예술을 통제하려 했으니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용산화재 참사’는 핏빛 스케치로,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은 목탄을 사용해 검은 스케치로 장면 장면을 조각보처럼 이어 붙였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민중미술의 기법은 진화하지 않았다는 인상도 들었다. 이를테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 작가 윌리엄 켄트리지는 목탄 그림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있지 않나. 그는 “(달라진 게 없다는 데) 동의하지 못하겠다. 보수 정부 10년이 이어지다보니 과거 상황과 기시감이 들어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에선 대형 가면도 있지만 ‘흙 회화’가 처음 등장했다며 흙에 대한 오마주 전시라 자평했다. “왜 디지털만 미디어(매체)라고 생각하느냐, 디지털 시대라 해서 그게 미술판을 독점하는 게 얼마나 우습냐. 아무도 쓰지 않은 흙을, 저 나름대로 새로운 미디어로 만들어냈다”고 할 땐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그는 2000년대 거리 예술가가 됐다. “외환위기 이후 서울 인사동에서 4년간 ‘당신도 예술가’ 실험을 하며 공공미술에 눈떴지요. 사람들이 미술관에 오지 않는다고 해서 문외한은 아니며 그들도 미술에 목말라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에게는 공공미술 영역에서 새 시도를 한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공공미술을 싹쓸이한다는 비난도 따라다닌다. 청계천 ‘전태일 기념상’을 비롯해 난지도 ‘하늘을 담는 그릇’, 창진동 친환경 놀이터 등이 대표작이다. ㈔흙과도시 ㈔세계문자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문자연구소는 14일부터 ‘서울로7017’에서 예술 행사를 벌인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