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업은 창업 이후 초기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판매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극심한 자금부족을 경험하게 된다. 이들 기업에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본조달을 위해 은행 등의 전통적인 금융기관 문을 두드리기는 쉽지 않다. 아직 시장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혁신벤처기업의 기술과 사업 아이템에 대한 투자는 매우 큰 위험을 수반하게 되고 이런 기업에 모험적인 투자를 감행할 만한 금융기관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은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맞닥뜨리게 되는 재무적 공백을 효과적으로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벤처캐피털은 벤처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및 경영참여를 통해 자금과 종합적인 경영지원을 제공하고 투자에서 회수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켜 나가는 투자방식이다.
그렇다면 벤처캐피털은 어떻게 혁신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키는가. 전문가들은 특정 기술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아직 경영관리 기능이 취약한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각종 경영노하우에 관해 컨설팅한다. 산업의 발전과정과 역사를 꿰고 있는 그들은 기업이 시장의 상황을 고려해 연구개발자금을 적절하게 할당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벤처기업이 특정기술개발이나 경영활동 수행에 한계를 발견할 때, 벤처캐피털은 축적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적시에 필요한 전문가들을 연결시켜 줌으로써 해당 기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기능을 담당한다. 또한 벤처기업에 내재되어 있는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방편으로 기업가치 평가에 근거해 성장단계별로 추가자금을 지원하는 투자방식을 취한다.
미국의 경우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은 기업의 특허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미국 경제의 원활한 혁신활동이 벤처캐피털의 지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들 중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기업공개 시 여타 기업에 비해 기업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고,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는 적정한 투자업체 선정, 기업 실사, 특유의 자금 및 경영지원 방식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벤처캐피털의 모험투자가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에 의해 인정받고 있다는 하나의 실례로 간주될 수 있다.
미국의 벤처캐피털에는 기업에서 경영자로서 경력을 쌓고 시장에 대한 안목을 키운 후 업계로 진입한 산업전문가들이 많다. 이들은 특정 산업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창업기업을 매의 눈으로 선택하고 이들의 기술혁신과 기술사업화 과정을 모니터링한다. 이들의 산업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투자회수에 필요한 자본시장에서의 금융지식이 결합해 벤처기업의 성공에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의 벤처캐피털 심사역들 중에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 금융업 출신들이 많고, 특정 산업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심사와 사후관리를 담당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한 형편이다. 첨단산업의 기술동향 및 변화하는 사회 트렌드를 잘 이해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의 성공 가능성을 간파할 수 있는, 다양한 배경의 경력자들이 한국의 벤처캐피털에 보다 많이 진출해야 하는 이유다. 2000년대 초 창업하여 성공한 벤처 1세대 경영인들이 벤처캐피털사를 설립하고 투자기업 발굴 및 창업 노하우 전수를 통해 후배 창업가들에게 스타트업 멘토를 자임하는 최근의 흐름은 매우 긍정적이며, 이들의 적극적인 행보가 한국 벤처업계의 미래에 큰 희망이 될 것이다.
벤처캐피털은 투자, 회수, 투자자금 재유치 및 또 다른 유망기업으로의 재투자라는 벤처생태계 선순환 구조의 중심축에 위치하고 있다. 산업 및 기술정책을 담당하는 국가기관들은 혁신기업의 가치창출을 통하여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을 구축하는 일에 벤처캐피털의 역량이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벤처캐피털 산업의 발전에 보다 많은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이재호 경희대 무역학과 교수
[경제시평-이재호] 벤처캐피털과 혁신기업
입력 2017-09-12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