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너무 다른 취업현장] 일본, 구직자는 골라서 취업… 기업은 일손 부족 폐업도

입력 2017-09-12 05:02
지난 6월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일본기업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한 참여 기업의 회사 소개를 듣고 있다. 일본은 최근 인력 부족으로 한국인들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뉴시스
재일 한국인 2세로 일본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이혜지(24)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 일본으로 돌아와 딱 2개월간 구직활동을 했다. 6개 기업의 면접시험을 봤고 3곳에 최종합격했다. 이 중 본인의 관심사에 가장 부합하는 헤드헌팅 회사 ‘휴먼리소시아’를 택해 올해 대학 졸업 후 입사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구직자가 보통 2∼3곳에 합격한 뒤 골라서 간다”며 “합격통보를 많이 받고도 정말로 맘에 드는 회사가 나올 때까지 구직활동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 영주권을 가진 한국인임에도 취업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한국 취업시장에서 강조되는 스펙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씨는 “면접 때 ‘영어와 한국어도 할 줄 아는데 왜 굳이 우리 회사에 오려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쉽게 그만둘 여지가 있는 고학력·고스펙 보유자보다 조직에 오래 충성할 만한 사람을 일본 기업이 선호한다는 얘기다.

대졸 취업희망자 97.6%가 취업

일본 문부과학성은 올 봄 대학 졸업자 56만7459명 중 76.1%인 43만2088명이 취업했다고 발표했다. 24년 만에 가장 높은 대졸 취업률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10년 60.8%까지 떨어진 뒤 7년 연속 상승했다.

전체 대졸자 중 취업한 사람의 비율(대졸 취업률)보다 취업 희망자 가운데 직장을 얻은 비율을 살펴보면 더욱 놀랍다. 문부성은 올해 취업 희망자 대비 취업자 비율이 대학 졸업생은 97.6%, 고등전문학교 졸업생은 100%라고 밝혔다. 이 비율도 관련 조사가 시작된 1997년 이후 최고치다. 취업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다 취업이 된다는 뜻이다.

일자리가 널려서 일본 청년들은 마음이 편하겠지만,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기업들은 필요한 만큼 인력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일본상공회의소가 중소기업 4072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8.7%가 “인력 부족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인력 확보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모집을 해도 응모가 전혀 없다”거나 “입사했다가 익숙해질 만하면 그만두는 사원이 많다”고 답했다. 삿포로의 한 요식업체 경영자는 “파트타임 시급을 정규직 급여 수준 이상으로 올렸는데도 응모가 없을까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일손 부족 때문에 문을 닫는 중소기업도 늘고 있다. 리서치업체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올 상반기 ‘인력 부족 도산’ 건수가 49건으로 4년 전(17건)보다 2.9배 늘었다고 밝혔다. 일례로 아이치현의 ‘헤이와 안경도매센터’는 한때 연매출 5억엔(51억1200만원)에 정규사원이 40명에 달했으나 창업 멤버가 일부 직원을 데리고 나가 독립하면서 일손 부족 상태에 빠졌다. 보너스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해 퇴직자가 잇따랐다. 결국 지난 2월 어음부도를 내고 폐업했다. 급여 불만을 이유로 종업원이 속속 떠나는 가운데 임금을 올려도 사람은 오지 않고, 임금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전가하기도 어려워 경영난에 빠지는 것이다.

호황에 노동인구 줄어 구인난 심화

일본에서 청년 취업률이 치솟고 기업 구인난이 심해진 것은 노동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경기 회복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8726만명이던 일본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지난해 7656만명으로 줄었다. 인구 감소 추세뿐 아니라 단카이세대(1947∼49년 태어난 베이비부머)가 정년을 맞아 대거 은퇴한 것도 노동력의 공백을 가져왔다.

이처럼 인력의 공급이 줄어든 반면 일본 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를 저점으로 채용 인원을 꾸준히 늘려 왔다. 아베노믹스의 성과로 기업들이 호황을 누리면서 고용에 적극 나선 것이다. 막대한 돈 풀기와 규제 개혁을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로 인해 기업 이익이 늘고 투자가 확대되는 선순환 구조가 다시 만들어졌다.

IBK경제연구소 장우애 연구위원은 “2013년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엔화 약세와 법인세 감면 등으로 기업 이익 개선세가 뚜렷하고, 해외로 나갔던 제조업체들이 돌아오는 현상도 발생했다”며 “기업 이익 개선과 제조업 회귀로 일자리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혹독한 ‘취업 빙하기’가 십수년간 지속되다가 따뜻한 ‘해빙기’를 맞은 것이다. 노동인구 감소라는 자연적 요인에 아베노믹스 성공이라는 정책적 요인이 합쳐진 결과다.

그러나 국가경제 차원에서 기업 구인난 악화는 향후 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 부족을 미리 대비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동안 억제돼온 임금 상승도 불가피해졌다. 지난해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 월급 평균은 20만3400엔(207만원)으로 일본 경제수준을 감안하면 낮은 편이다. 농림중금종합연구소 미나미 다케시 수석연구원은 “이제 기업도 도망갈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들은 일손을 구하러 해외 인재 채용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한국인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일본어 능력이 뛰어나고 문화적 친화성도 높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눈을 돌리는 한국의 청년 구직자도 늘고 있다. 일본에서 신규 고용된 한국인 수는 2008년 2만661명에서 지난해 4만8121명으로 2.3배 증가했다.

도쿄=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